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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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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꽃 잔치-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2-03-21 21: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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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춘지절 눈 쌓인 함양 대봉산 언 땅을 뚫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복수초는 어김없이 펼쳐질 꽃 잔치를 예고했다. 남녘의 봄은 섬진강 푸른 물결을 따라 살포시 뭍에 오른다. ‘꽃피는 마을’ 하동 화개(花開) 십리벚꽃길을 휘돌아 지리산 자락에도 꽃 사태를 안긴다. 진해만 벚꽃길에도, 낙동강 변 양산 원동 매화밭에도 일제히 화신(花信)이 하달된다. 순백의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배꽃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며 한바탕 춘흥이 흐드러진다.

    ▼또다시 봄이다. 겨우내 야윈 가지에 연초록빛이 움튼다. 꽁꽁 언 강물도 몸을 푼다. 생동하는 봄기운은 만물을 들뜨게 한다. 잎도 나오기 전에 서둘러 봄꽃을 재촉하는 조급함이 앞선다. 잎 터져 나오는 소리는 무단히 설렘의 탄성을 자아낸다. 상춘(賞春)의 마음이 동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김용택. 봄날)

    ▼겨울은 봄의 기약이다. 꽃은 말없이 모진 추위를 견딘 인고의 산물이다. 묵묵히 피고 지며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전한다. 조선 최고 문장가로 꼽히는 이덕무는 복사꽃 붉은 삼월의 계곡에서 마음을 씻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웃음 속에 감춘 칼과 마음속에 품은 화살과 가슴속에 가득 찬 가시가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낀다’(선귤당농소)

    ▼3년째 꽃 잔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전국 최대 벚꽃 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올해도 취소됐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상춘객의 방문 자제도 요청했다. 연분홍빛이 감도는 가냘픈 하늘거림을 먼발치에서 마음에 담아야 할 형편이다. 그나마 축제는 열지 않아도 꽃구경을 허용하는 곳은 늘었다. 꽃그늘 아래서 역병의 기습에 찌든 심신을 위로했으면 한다. 아무리 추워도 꽃은 피듯 이 어려움도 지나갈 것이란 자연의 암시이자 선물이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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