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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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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 이화주

  • 기사입력 : 2022-03-03 08:03:01
  •   

  • 엄마, 엄마

    도서관의 책을

    거꾸로 들고 탁탁 털면

    글자들이 소소소 소소소 쏟아졌으면 좋겠어.


    아주아주 커다란 솥에 놓고

    보글보글 끓여서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한테

    한 컵씩 먹이면 안 될까?


    ☞ 이 깜찍하고 재미있는 동시를 읽고 나는 심히 부끄러웠다.

    ‘내가 그동안 써 온 책들이 아이들이 읽기에 지루하지 않았을까?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나도 내 책의 글자들을 탁탁 털어 보글보글 국을 끓여 아이들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숙제처럼 책을 읽었을 아이들에게 내 글을 뜨겁게 끓여 내놓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국마저 맛이 없다고 하면 어쩌지? 요즘 아이들 입맛이 얼마나 예민하고 다양한데!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겸연쩍어 피식 웃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쉽게 책 읽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얼마나 책을 읽기 싫었으면 요런 기발한 생각까지 해냈을까도 싶다. 그 무거운 글자들이 쏟아질 때는 ‘소소소 소소소’ 하고 눈처럼 가벼운 소리를 낸다. 책 속에 박혀 있을 때는 예쁘지 않은 글자들이 떨어질 때는 꽃잎처럼 소소소 휘날린다. 오히려 글자가 많은 책일수록 단숨에 쏟아버리는 재미가 더 있겠다. 커다란 솥에서 보글보글 글자들을 끓이는 모습은 동화 속의 한 장면 같다. 꽃 이야기를 끓이면 꽃향기가 나고 바다 이야기를 끓이면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올라오겠지? 이야기의 장면마다 단맛, 쓴맛, 짠맛, 고소한 맛이 나겠지? 맛이 좀 밍밍해도 한 컵 마셔주는 것쯤이야 책 읽기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다. 요즘은 아이들의 방학 숙제가 책 읽기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책을 읽고 독서기록장까지 써야 하니 더 힘들다고도 한다. 책 읽기가 숙제가 아니고 놀이였으면 좋겠다. 책을 읽든, 책을 가지고 놀든, 글자를 털어내서 보글보글 끓이든, 어쨌든 책 읽기는 놀이였으면 한다. 때론 그 책에서 단맛이 나서 아이들이 다음 책을 기다리는 재미도 있었으면 한다.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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