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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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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함양 목화 명인 임채장

37년 목화 장인의 손길… 오늘도 그는 솜을 따고 솜을 탄다
함양군 지곡면서 유기농 목화 재배
목화시배지 산청서 종자 받아 농사

  • 기사입력 : 2022-01-26 2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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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화 농업은 여전히 절멸 위기이지만 희망은 남아있다.

    함양에서 목화를 직접 재배하고 목화 솜을 타는 사업을 하는 임채장(67) 목화 명인은 함양군 지곡면에서 37년째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고 있으며, 함양읍 운림리에서 솜타는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임채장 목화 명인이 목화솜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임채장 목화 명인이 목화솜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지난주 함양읍 운림리 목화 솜 타는 사업장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빛바랜 현수막과 노후화된 기계들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목화 농사를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마을마다 최소 3~4농가는 목화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목화 농가는 점차 줄어들어 서부경남에서는 유일하게 혼자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960~1970년대에는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을 정도로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1980년대 접어들어 값싸고 가벼운 화학 제품이 들어오면서 목화의 몰락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임채장 목화 장인이 사라져가는 목화를 끝내 놓지 못하는 이유는 목화 농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신만이라도 목화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인근 산청군의 문익점 목화시배지에서 목화 종자를 받아 농사짓고 있다고 말했다.

    임 목화 명인이 솜을 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임 목화 명인이 솜을 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목화를 시험 재배한 것으로 알려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는 문익점면화시배지(文益漸棉花始培地)가 사적 제108호로 지정돼 있고, 여기에 삼우당선생면화시배사적비(三憂堂先生棉花始培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한때 그는 인근 거창군에서 문구점을 운영했었다. 하지만 함양에서 솜 타는 사업장을 운영하는 장인 어른의 권유로 이 사업장을 물려받게 됐다고 전했다. 비록 사양 사업으로 접어들었지만 그동안 한 우물만 파 왔다고 그는 자부했다.

    2대에 걸쳐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함양군 지곡면에서 목화를 직접 재배해 자신의 솜 공장에서 솜을 타고 이불을 만드는 작업까지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목화를 직접 재배해 목화솜으로 만들고 있으며 최근에는 최고급 혼수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자랑하며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과거 시집가면서 혼수품으로 목화솜 이불을 챙겨가는 영광을 다시 재현하고 싶다고도 했다.

    오랫동안 사용한 솜이불은 임채장 장인의 손을 거치면 새 이불로 거듭난다. 이를 솜을 탄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압축되고 무거워진 솜이불을 기계를 이용해 부드럽게 부풀리는 작업만 거치면 새 이불이 되는 것이다.

    임 목화 명인이 솜을 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임 목화 명인이 솜을 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동물성인 오리털이나 거위털에 비해 목화는 식물에서 생산된 것으로 가장 사람에게 무해하고, 신생아에게는 더없이 좋은 것이 목화라고 소개한다.

    목화솜은 5월에 목화씨를 심어 10월 아름다운 꽃이 피고, 보름 정도 지나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목화가 만들어진다. 이후 서리가 오기 전 수확해야 최상품의 솜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그는 함양읍 신관리와 지곡면 등지에서 37년째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전국의 경관지구에 심었던 목화를 수확해 가져온다. 그는 1년에 4~5t가량의 목화를 사용한다. 이불 1채를 만드는 데 3㎏ 정도의 목화솜이 사용된다.

    솜 타는 기계, 솜틀집은 목화솜에서 씨앗을 분리하거나 솜이불을 제작하고, 헌 솜을 새 솜으로 되살려내는 등의 작업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목화밭과 함께 목화가 살아 숨 쉬는 또 하나의 터전이다.

    또 목화씨앗을 솜에서 분리하는 조면기를 비롯해 솜을 타는 카드기를 통해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면화 또는 초면이라고도 불리는 목화는 인도가 원산지이고 ‘어머니의 사랑’이 꽃말이며, 고려시대인 1363년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숨겨와 재배한 것이 그 시초이다.

    목화는 매년 5~6월에 파종해 10~12월에 수확하는 섬유 작물로써 목화 씨앗이 맺을 때 생기는 털을 이용해 솜과 무명천을 만들었는데 천연 섬유인 면 재질의 옷과 이불은 우리 조상의 의복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앞으로 함양군에서 전통산업 보전을 위한 지원을 바라고 있다. 이후에는 솜틀집 박물관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 10년 정도 있으면 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주는 것이라며 목화솜을 구하기 위해 일부러 함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하게 목화솜을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의 자녀와 어느 정도 협의된 사항으로 목화솜의 명맥은 꾸준하게 이어질 것이다. 자녀와 함께 현 시대에 맞는 침구류를 만들어 나갈 계획도 있다.

    또 목화가 무엇인지, 목화솜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체험학습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직접 재배하고 만든 목화 솜이불을 기부해 어려운 이웃에게 따듯한 온기를 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매년 지역학교에 교육용 목화 모종을 기부하는 등 나눔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또 함양·산청·거창 등지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목화 유기농 농사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글·사진=서희원 기자 seh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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