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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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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이름 짓기 - 김규동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대표)

  • 기사입력 : 2022-01-24 21: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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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번째다. 필요한 이름을 지은 게 말이다. 첫째와 두 번째는 아이들 이름이었다. 선물로 받은 딸의 이름을 짓는 일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평생 불려야 할 이름이기에 그만큼 중요했다. 소아과에서 200개가 넘는 예쁜 이름을 받아서 일일이 불러보고 뜻을 찾아보며 비교하고 고민한 결과 딸은 돌림자(字)를 따랐다. 둘째 아들은 공평하게 아내가 지었지만 결국 돌림으로 해 고민을 덜었다. 그만큼 이름을 짓는 일은 만만찮았다. 세 번째는 택호(宅號)였다. 번듯한 집도 없고 아파트에 살아 쓸데없었지만 재려고 만들었다. 우리 집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가훈과도 어울리는 낱말들을 찾아 짓기까지 수년을 만지작거렸다. 바로 ‘더불어 기뻐하는 곳’이란 여락재(與樂齋)이다. 그렇게 만든 택호를 깊숙이 묻어뒀다 일 년 전 겨우 자리를 찾아줬다.

    세 번의 이름을 지으며 다시는 이름 지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후반전을 함께할 놀이터의 이름이 필요해졌다. 번거로워도 쓸모를 따지면 있어야 마땅했다. 나름의 기준에 맞춰 지어진 게 ‘사람대장간’이다. 우선 한글로 쉬우며 재치있고 뻔하지 않아야 했다. 낯설어도 인문학 공유공간임을 알아차리면 더 좋았다. 수없이 바꾸고 고쳤다. 글자체와 크기, 심벌마크까지 완성하는데 엄청난 정성을 쏟았다.

    처음 명함을 받으면 다들 멋쩍게 웃는다. 일부러 그랬다. 딱딱한 명함보다는 느슨한 만남을 위해서다. 그렇게 다가가고 싶어서 ‘얼렁뚱땅’도 붙였다. 대장간의 시끄러운 소리와 가장 그럴듯한 단어였다. 으뜸도 아니고 얼렁뚱땅한다니 기가 막히지만 뭐 어떤가? 긴장과 굴레, 빽빽함보다는 헐렁함으로 사람 냄새 스며드는 장소로 가꾸고 싶다. 만만하게 들어와 자신만의 소중한 달란트를 더하고 빼고 곱해 쓸모를 키운다면 이웃과 나눌만한 겨를도 찾을 것이다.

    이 터는 각자의 삶을 두드려 마음을 펴고 생각을 곧게 만드는 공간이다. 대장간이 모루 위에서 철판을 망치로 때리고 두드려서 필요를 채워줬다면 사람대장간은 책과 펜으로 더불어 기뻐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곳이다. 배워서 남 주는 놀이터의 이름으로 어떠한지 궁금하다. 그래서 대표보다는 주인이, 아니 김 씨가 더 걸맞다.

    김규동 (사람대장간 얼렁뚱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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