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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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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안상근(가야대 부총장)

  • 기사입력 : 2022-01-23 19: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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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연말부터 상영되는 영화 한 편이 눈에 띈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이다. 1999년에 첫 개봉된 ‘매트릭스’는 가상현실 속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감독은 매트릭스의 개념을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쓴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이다. 실제가 없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을 지배하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실제보다 더 실제적이다. 한 마디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한글로 옮긴이의 해제를 빌리자면, 오늘날 대중 사회는 조작의 사회다. 우리는 실제가 없는 허구 속에 살고 있다. 실제가 없는 사회는 거짓 위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면서 실제가 있는 척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뉴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사회연결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 속도도 빠를 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부터 난민 문제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 가짜 뉴스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가짜 뉴스보다 더 강력한 딥 페이크(deep fake)라는 가짜 동영상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영상 속 인물을 다른 얼굴과 합성하는 방식으로 가짜 영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내용과 방법이 갈수록 교묘하고 위력적이다.

    가짜 뉴스는 선거의 판도를 바꿀 만큼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악의적으로 생산·유통되는 가짜 뉴스들은 유권자들의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부합되는 가짜 뉴스에 대해 쉽게 현혹된다. 자신의 정치적 선호와 다를 경우에는 진실된 정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진짜 정보를 가짜 정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들 간의 활발한 공론의 장을 가로막고 갈등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다.

    사실 가짜 뉴스라는 말은 의미조차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뉴스 기사 형식을 갖춘 거짓 정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거짓 정보가 항상 뉴스 기사 형식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형식을 기준으로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국에서는 누군가를 고의로 속이기 위한 의도성이 없는 경우를 거짓 정보로, 의도성이 있는 경우를 허위 정보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정보 생산자의 고의성을 명백히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 뉴스가 큰 파장을 일으킨 이후 세계 각국은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응 전략과 대책들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그동안 논의의 과정은 있었지만 진영 논리만 난무했을 뿐 가짜 뉴스의 원인과 실체를 규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가짜 뉴스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규제의 대상과 범위를 너무 넓힐 경우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권익 보호도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만큼 가짜 뉴스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선거에서 유능한 후보자들이 가짜 뉴스에 희생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선거를 앞두고 가짜 뉴스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의 엄정하고 철저한 대응 시스템이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의 책임 있는 역할도 중요한 만큼 사실 검증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가짜 뉴스 해결의 결정적 열쇠는 언론 소비자들이 쥐고 있다. 가짜 뉴스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시민 문해 교육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안상근(가야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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