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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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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조선 사발 맥 잇는 사기장 신한균 NPO법기도요 이사장

나는 흙쟁이·불쟁이… 오늘도 물레 돌리고 불가마에서 밤을 샌다

  • 기사입력 : 2022-01-19 21:09:52
  •   
  • 조선 전통사발 400년 만에 국내서 재현한

    고 신정희 사기장의 장자이자 전수자

    부친 뜻 따라 통도사 인근서 전통 맥 이어


    좋은 흙 구하려고 전국 방방곡곡 발품 팔고

    3일 밤낮으로 가마 지켜야 찬란한 자기 탄생

    “도자기는 손이 아닌 가슴으로 만드는 것”

    신한균 사기장이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다.
    신한균 사기장이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다.

    혼을 불어넣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제대로 된 도자기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줌의 흙이 찬란한 자기로 태어나는 과정은 소홀함을 용납치 않습니다. 좋은 흙은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는 것을 시작으로 3일간 밤낮으로 가마를 지키는 등 발품과 땀을 흘려야 제대로 된 도자기가 탄생합니다. 흙과 불에 몰입, 나를 잊을 때 한 줌의 흙이 찬란한 자기로 변신합니다.

    신한균 사기장은 한국 도자기의 맥을 이어온 사기장 중 최고의 사기장으로 알려진 고(故) 신정희 사기장의 장자이자 전수자이다. 신 사기장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통도사 인근에서 조선사발 재현의 맥을 잇기 위해 오늘도 쉼 없이 물레를 돌리고 1000℃가 넘는 가마 앞에서 밤을 샌다. 여기다 일본사발의 시작인 법기도요지의 규명과 부흥을 위해 NPO(민간비영리단체)법기도요 이사장을 맡고 활동 중이다.

    신 사기장이 불가마 앞에서 밤을 새우고 있다.
    신 사기장이 불가마 앞에서 밤을 새우고 있다.

    -나는 흙쟁이 불쟁이다.

    우리 도자기의 맥을 되살리고 우리 이름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신한균 사기장. 그는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조선 전통 사발을 400년 만에 국내서 처음으로 재현한 고(故) 신정희 사기장의 아들이다. 30여년 동안 도자기 만드는 일과 더불어 일본 학자가 왜곡한 우리 도자기의 본질을 바로 알리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쓰고 강연도 하고 있다. 1989년 일본 도큐백화점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초대전을 열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한국 도자기의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장편소설 ‘신의 그릇’(1, 2권)을 발표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이 책은 황도사발(이도다완)에 얽힌 비밀을 흥미롭게 풀어냈을 뿐 아니라 사기장들의 처절한 분투와 절망을 심도 있게 표현해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도자기의 종주국 임에도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한국의 현실 속에서 꿋꿋이 우리 그릇을 알리고 있으며 현재 일본인이 ‘고려다완’이라 부르는 우리나라의 사발이 ‘막사발’이라고 불리는 것에 ‘조선사발’(황도사발)로 부르자고 끊임없이 주장을 펴고 있다.

    신한균 사기장의 장편소설 ‘신의 그릇’.
    신한균 사기장의 장편소설 ‘신의 그릇’.

    신 사기장은 도자기를 이야기할 때 열정적인 달변가이다. 사기장은 불을 조절해 도자기를 굽는 사람이기에 불쟁이라고도 부른다. 신 사기장의 도자기 만드는 섬세함은 그의 따뜻한 천성적인 기질 때문일까 . 아버지인 고(故) 신정희 사기장은 생전에 도자기 귀신이 씌었다고 할 정도로 오로지 도자기에만 온 열정을 쏟으셨고 그 결과 우리 옛 조선사발을 재현해냈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아버지의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는 것. 예를 들어 “흙에서 꼬신내를 느껴야만 참된 사기장이 될 수 있다”라던가, “도자기는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비 갠 후 발자국이 있는 흙을 퍼 와서 도자기를 만들어라. 그러면 세상에서 존재하는 단 하나의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사기장은 흙의 자주적인 힘을 끌어내는 자”라는 말들이 개인적으로는 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다.

    공부하고 만들고를 거듭할수록 신비한 도자기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다는 신 사기장에게 도자기란 어떤 예술인가를 들어보았다. 그는 한마디로 말해서 도자기는 불의 예술이라고 한다. 도자기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불의 온도이기 때문이고 불을 지피는 장작은 화가로 말하면 붓이요, 물감이라는 것. 화가가 붓을 들고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이 사기장은 장작개비라는 붓을 하나 던짐으로써 도자기라는 그림을 그려 나간다. 사기장이 도자기를 빚는 일은 머리만으로, 말만으로는 할 수 없다 한다. 꼭 심산유곡의 좋은 흙을 찾아서 밟고 물레를 차고 장작불을 때서 만드는 것이 도자기이다. 구울 때 장작개비 하나만 잘못 던져도 빛깔과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1300℃ 이상의 온도에서는 공기 중의 습도가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등 가변적 요소가 너무 많다고 한다.

    “도자기는 일반 그릇이 아니지요.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것입니다. 도자기는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건 그런 뜻이지요. 우리 옛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중 하나는 도자기 피부의 고운 살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자기 피부는 태토를 말합니다. 태토는 흙입니다. 흙과 장작불이 만나서 나오는 때깔이 도자기의 피부라 할 수 있지요. 보통 사람들은 형태나 때깔을 보지만 사기장은 태토를 봅니다. 왜냐하면 도자기의 원천인 흙을 가장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조각가가 돌을 보고 형상을 찾아주는 자라면 사기장은 흙을 보고 흙 고유의 때깔을 도자기로 만들어 주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사기장은 흙의 자주적인 힘을 끌어내는 자라고 할 수 있지요. 첫째도 흙이요, 둘째도 흙이고, 셋째도 흙입니다.”

    그는 흙 찾는 방법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다. 흙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기장은 흙의 때깔을 찾아주는 자라고 한다.


    1989년 일본 전시 이후 매년 초대전 열고

    2008년엔 조선 사기장 삶 다룬 소설 펴내

    30여년간 우리 도자기 본질 알리려 강연도


    법기도요 이사장직 맡아 한일 도자역사 규명

    “양산 법기리요지는우리 도자 예술의 산실

    한국 도자사 새 좌표 설정에도 중요한 곳 ”


    -NPO법기도요 이사장

    신 사기장은 법기도요 이사장직을 맡아 한국전통사발과 한일 도자역사를 규명하는 한편 법기도요지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기리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사발은 일본인들이 ‘이라보다완’이라고 부르는 ‘양산사발’이다. 이라보다완을 양산사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소 거칠게 보이는 사발류는 법기리에서만 생산했기 때문이다. 법기리 가마는 1638년께 부산 왜관(수정동) 근처로 옮겨간다. 그리고 1644년 부산 왜관 안으로 이주한다. 당시에는 법적으로 일본인은 왜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일본인의 디자인이 조선 사기장에 전달돼 만들어졌으나 일본인 간섭이 적기에 양산사발들은 일본 디자인임에도 조선식 사발 특성이 많이 내포돼 있다. 중요한 것은 부산 왜관에서 만든 것과 같은 사금파리가 법기리에서 많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것을 유추해보면 주문 사발을 법기리에서 빚다가 부산 왜관요로 이전한 뒤 공식적으로는 주문 사발을 부산 왜관에서 빚었지만, 비공식으로는 양산 법기리에서 그와 똑같은 것을 계속 빚었다는 뜻이다. 그는 양산 법기리 가마터는 한일 간 도자 역사를 풀어주는 열쇠라 생각한다. 이 가마터를 발굴한다면 일본인들이 그토록 아끼고 보물이 돼 있는 조선사발들의 미스터리를 푸는 실마리가 반드시 나온다고 확신한다.

    신 사기장이 도자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신 사기장이 도자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최근 그는 세미나를 열어 1963년 1월 경주 포석정(사적 제1호)과 함께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전남 강진 고려청자요지(사적 제68호)’, ‘전북 부안 유천리요지(사적 제69호) 및 진서리요지(사적 제70호)’와 더불어 ‘경남 양산 법기리요지(사적 제100호)’ 즉 양산 법기요지에 대해 논의했다. 양산 법기리도요지를 제외한 강진군과 부안군은 요지 발굴 후 박물관을 건립했고 현재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양산법기도요지도 강진이나 부안 처럼 평가받고 다양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한균 이사장은 “여러 차례의 일본 현지조사와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통해 법기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이 일본에서 명품으로 대접 받는 상황을 확인했다”며 “법기리요지는 한·일 간의 도자 역사를 풀어주는 열쇠이자 우리 도자 예술의 산실로 한국 도자사의 새로운 좌표 설정에도 아주 중요한 장소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963년 국가 사적지 100호로 지정된 법기리도요지는 양산시 동면 법기리 산 82 일원 1749㎡ 규모의 조선 중기 가마터다.

    글·사진= 김석호 기자 shkim18@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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