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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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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35) 사천 실안 낙조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붉게 번지네

  • 기사입력 : 2022-01-18 2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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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지난날은


    빛보다 빠르게 마감하는 하루를 지난다

    지나친다는 건 잊기 위한 사소한 변명거리를 만들려는 것


    서두르지 않았는데도

    그럴 마음이란 애초부터 없었는데도


    느닷없는 모든 어둠은 직전

    놀랍다는 표정이 남는다


    최후의 전언이라도 남기려는 것처럼

    돌아서면서 싱긋 웃어주는 사람처럼


    하루만 살고 그만인 눈빛 아래

    서쪽으로 서쪽으로 붉디붉은 그늘이 진다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컥 한다


    ☞ 사천시 실안동 1254. 실안의 일몰 풍경은 ‘실안 낙조’로 이름난 곳이다. 수많은 사진작가와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하루의 마지막 얼굴을 보여주는 곳. 일몰은 낮의 끝이면서 동시에 밤의 직전이다. 곧 밤이 오면 모든 풍경을 검은 장막에 가둘 것이기에 그 직전을 이렇게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것이리라.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의미도 한데 묶어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태가 2년여 가까이 지속되면서 일상은 무너졌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활방식이 우리를 혼란 속으로 내몰고 있다. 심신이 지쳐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슴을 찢는다. 지나놓고 보면 다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는 날이 언제쯤이면 올까. 밤은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을 위해 비밀을 감추어 두고 견디는 힘을 시험하는 것일까. 붉디붉게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길게 번진다.

    시·글= 이기영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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