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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1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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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기자의 판읽기 (9) 남해 아동학대살해 계모 1심 판결문

울음소리조차 못낸 죽음… 삶 마감하고서야 학대 벗어나
별거 남편과 다툰 후 “말 안듣는다” 이유로
13살 의붓딸 1시간여 폭행 장기 파열 사망

  • 기사입력 : 2022-01-17 21: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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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 기자의 9번째 판읽기(판결문 읽어주는 기자), 아래의 판결문 속 ‘양형 이유’를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전해드리며 시작합니다.

    ◇“삶을 마감함으로써….”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남편 전처소생의 자녀들인 피해자들을 학대하고 특히 숨진 피해자 A양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상습적으로 체벌·가혹행위 등 학대를 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의 장기가 손상되고 배 안에 염증이 발생하면서 음식물 섭취가 제한되고 배가 부풀어 오르는 등 심각한 건강상 위험을 초래하였음은 물론 이로 인하여 극도로 쇠약해진 피해자 A양을 사건 당일까지 학대하다가 살해한 것이다. 피고인의 학대행위는 우발적이거나 1회성이 아니라,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계속되었는 바, 그 범행의 경위, 내용, 횟수, 기간 등에 비추어 죄질이 극도로 불량하다.

    (중략)〉

    바로 지난해 6월 남해에서 13살 의붓딸을 상습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계모 B(41)씨에 대한 1심 판결문 내용입니다. 징역 30년을 내린 판사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삶을 마감함으로써 피고인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심리한 판사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느낄 마음이겠지요.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정성호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살해·일명 ‘정인이법’)·아동복지법 위반(상습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B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40시간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관련기관 10년 취업 제한을 명령했습니다. B씨는 지난해 6월 22일 남해군 고현면의 한 아파트에서 별거 중인 남편과 전화로 다툰 후 화가 난 상태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오후 10시 10분께부터 11시 37분께까지 A양을 폭행해 장기 파열 등 복부 손상으로 사망하게 한 혐의, 2020년 8월부터 4회에 걸쳐 때리거나 신체에 손상을 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였습니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밟은 것은 사실이나 ‘비비면서 눌러’ 신체적으로 학대하지는 않았다”며 “피고인은 남편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기 위하여 살해한 것은 아니고, 다만 A양의 신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학대행위를 해 사망에 이르게 했을 뿐으로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증거로 채택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와 증인 진술, 법의학의견서 등을 토대로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 부장판사는 “거듭된 학대로 매우 쇠약해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피해자에게, 그것도 생명을 유지함에 중요한 여러 장기들이 모여 있는 복부를 3회 강하게 밟아 강한 둔력을 행사했다”며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인이법’ 첫 적용

    돌이켜보건대 이 사건은 사건의 충격만큼이나 법 적용으로도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정인이법’이 만들어진 후 처음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이 법(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은 양부모의 학대로 입양 271일 만인 지난 2020년 10월 숨진 ‘정인이 사건’이 계기가 돼 지난해 3월에 만들어져 시행됐습니다.

    정인이 사건 이후 각계각층에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예방책이 쏟아져 나왔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한 것이지요. 아동학대 범죄를 범한 사람이 아동을 살해한 때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해 기존 아동학대치사죄(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보다 형량을 더 무겁게 한 것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원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점을 반영해 아동학대 범죄의 양형 기준도 지난달 6일 대폭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특히 아동학대살해의 양형기준을 새로 설정했는데, 권고 형량범위를 기본 범위 징역 17~22년, 감경 영역은 징역 12~18년, 가중 영역은 징역 20년 이상·무기징역 이상으로 설정했군요. 다만 수정안을 이번 달에 확정한 뒤 관계기관 의견조회를 거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행정예고하는 한편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도 거쳐 3월 최종 의결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이번 사건도 아동학대살해죄에 대해 양형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채 판결이 나왔고요.

    ◇어린 생명들의 희생으로…

    아동학대살해죄가 추가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인 정인이법은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만들어졌지요.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2014년에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자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이 만들어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직전해인 2013년에는 칠곡 계모 아동학대사망 사건과 울산 계모 사건 등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고, 그들의 희생 이후 아동보호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나 우리 사회가 되돌아본 것이지요. 어린 생명들의 희생으로 아동보호 시스템이 진전되고 있는 것이라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크나큰 빚을 졌습니다. 사실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아동학대범죄가 치밀하게 규정되어 있지 못했을 뿐이지 학대로부터 아동을 지킬 수 있는 아동복지법은 존재했었습니다.

    A양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났고, 이 사건은 이제 ‘남해 계모 사건’이라 통용되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정인이법 첫 적용’이라는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사실 하나에 우리의 시선은 더 뺏겨 있습니다. A양의 희생이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법이 된 어린 생명들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 감수성을 더 높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아동학대를 감시하고 예방하는 보호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게 숙제일 것입니다. 아동학대 범죄가 ‘집안 일’이 아니기에 교육·보육 당국과 이웃의 적극적인 관심이 더 요구되는 건 물론이고요.

    도내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는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고 학대 발생 시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A양은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지고, 아빠의 재혼으로 계모 B씨를 만났습니다. 숨진 당일 아빠와 B씨는 이혼서류를 접수했고요. 당시 본지 김호철 기자의 취재 내용에 따르면 아이가 죽어 가던 그날 밤, 아파트에선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 기자의 9번째 판읽기, 재판부의 양형 이유를 그대로 전하며 마칩니다.

    <어린 자녀들은 자신을 양육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A양은 2번에 걸친 부모의 이혼을 겪으면서 끝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양육하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태도에 크나큰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고, 이로 인한 피고인의 계속된 학대행위로 A양은 보호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함으로써 피고인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데, A양이 느꼈을 신체적 고통 및 고립감, 공포, 슬픔 등의 정신적 고통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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