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2년 05월 28일 (토)
전체메뉴

[촉석루] 가치의 다양화-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22-01-09 20:37:57
  •   

  • ‘숲으로 된 성벽’이라는 기형도 시인의 시가 있다. 이 시에는 “신비로운” 공간이 나타나는데, 농부들과 당나귀들은 몸이 공기로 변한 듯 성벽을 통과해 다닌다. 또 부를 추구하는 골동품 상인도 이 시에 등장한다. 그는 성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몸을 공기처럼 변환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성벽을 이룬 나무들을 베어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공터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간다. 누군가에게 귀한 공간이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곳이 되는 셈이다.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가 극에 달해, 돈이 삶의 목적이 되었다. 마이클 샌델 같은 윤리적 성향의 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바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게 아닌가 싶다. 근대 이전에는 사랑, 정의, 진리, 부(富) 등 다양한 가치들이 동등하게 인정받았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인은 ‘부’라는 가치만을 일률적으로 추구하며 산다. 사랑, 우정, 학문 등도 본래의 가치를 잃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간다.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자본 보유의 조건이 다르므로 불균형이 심각하다. 한마디로 자본이 없는 사람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성탄 즈음에 어느 노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기도할 때는 빈손으로 하지 말고 꼭 제물(祭物)을 바치라는 것, 그 제물(祭物)은 돈이 아니라 주변인에게 선행이나 관용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들을 부각시킨 말씀이 와닿았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한 부의 축적을 추구한다. 그런데 우리의 욕망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것이므로 수입과 소비라는 다람쥐 챗바퀴 같은 세계를 맴돌며 살게 된다. 이런 때에 원하는 바를 기원하면서 제물을 바친다는 마음으로 다른 가치들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미운 사람에 대한 감정을 한 겹 벗겨내거나, 도움이 필요한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작은 일부터 시작해본다면 자본주의가 안겨주는 결핍을 다른 가치들로 조금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이주언(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