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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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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먹- 변정원

  • 기사입력 : 2022-01-06 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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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다란 벼루 위에

    까만 돌 하나

    골똘히 생각하며

    혼자 돌고 있다

    먹는 거라곤

    그저 물 한 모금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사그락거리며

    온갖 생각들을

    쏟아놓는다

    새까맣게

    토해낸다.


    ☞ 이 동시는 자태가 단아하다. 벼루에 앉아 있는 작은 돌은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을까. 혼자서 쉼 없이 도는 먹은 한 가지 마음으로 정진하는 순수한 모습이다. ‘먹는 거라곤 그저 물 한 모금’ 밖에 없으니 욕심 없는 구도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까만 눈을 지그시 감고 ‘사그락거리며 온갖 생각들을 쏟아놓으면’ 진한 먹물의 향기가 그 상념들을 갈무리한다. ‘새까맣게 토해낸’ 먹의 말들은 하얀 종이에 획을 그으며 선명하게 드러난다. 붓을 들기 전의 고요와 맑은 생각 속에 화자가 있다. 그래서 이 동시를 읽고 나면 가슴에 반듯한 기운이 차오르고 온몸에 은은한 먹 향이 배어든다.

    예부터 선비들이 쓰는 종이와 붓과 먹, 그리고 벼루를 의인화하여 문방사우라 하였다. 요즘 아이들도 학교에서 한 번쯤 서예를 배워보았을 것이다. 먹을 잡았을 때의 촉감과 벼루에 갈 때의 질감, 먹물에서 번져오는 향기는 우리를 고아한 감성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벼루에 먹을 가는 동안 옛 선비들의 정신에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

    새해이다. 하얀 종이를 펼쳐 놓고 지그시 눈을 감고 먹을 갈아 새해의 소망을 적어보고 싶다. 비워서 정갈해진 마음으로 새해의 희망을 천천히 채워보자.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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