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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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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뒷모습을 보며- 김형엽(시인)

  • 기사입력 : 2021-12-27 0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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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처음으로 자수 놓는 일에 도전을 했다. 수를 놓다보니 문양이 완성된 앞면보다 자수 뒷면에 자주 눈길이 머문다. 한 땀 한 땀 실과 바늘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선명한 말줄임표 같아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쓰고 있는 말의 상태가 어떤지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나치게 넘치는 말로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주는 줄 모르고 주는 게 상처이고, 받는 줄 모르고 받는 게 선물’이라는 말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 할 일 묵묵히 다하고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매듭은 아름다운 침묵의 입술 같다. 나 스스로는 침묵을 예찬하지만 어느 순간, 침묵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말이 아닌 소음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상황을 그릇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느새 자수의 뒷면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에 나는 한 땀 한 땀 더 신중하게 놓으려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자수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뒷모습에서 고독이나 근심, 고통 같은 삶의 무게를 먼저 읽는다. 뒷모습이 축 쳐져 있거나 휘어진 모습이라면 그것이 마치 나의 모습인 것 같아 안쓰럽고 가만히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지도 벌써 2년이 됐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소상공인은 물론,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의 뒷모습도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치고 힘겨워 보인다. 학생들과 청년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새해에는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애써 희망해보지만 위드 코로나가 다시 멈춘 지금, 앞날을 예측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는 일조차 막연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노를 저어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동력은 긍정의 마음과 서로의 무거운 뒷모습을 토닥거리고 힘껏 밀어줄 수 있는 따스한 손길이다. 이제는 살맛이 난다며 크게 웃느라 들썩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새해에는 부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형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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