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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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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달빛 절리를 꿈꾸며- 김성영

  • 기사입력 : 2021-12-16 10: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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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깃든 쪽방에는 비 오는 날 달이 뜬다

    필생의 꿈 파도치는 반지하 쪽빛 섬에서

    비장의 달을 띄우고 내일의 집을 짓는다


    널빤지마다 판상절리 기둥마다 주상절리

    끊임없는 풍파로 절경이 되는 시간을 입고

    보름달 폭포수 아래 그의 방백 철썩인다


    딸들아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다오

    나의 팔뚝 아직은 힘줄 불끈 시퍼렇고

    악물고 버틸 이빨도 절반 넘게 남았단다


    공치는 날 목수의 바다 서설인 듯 꽃비인 듯

    저만치 예고편으로 다가오는 준공식에

    절리로 직립한 달빛, 젖지 않는 실화다


    초저녁에 한잠 눈을 붙이고 나면 당최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에 지었다 허문 기와집이 수십 채라는 친정엄마 말씀이 생각난다. 고구마 한 바가지 건네고 팥죽 한 사발 건너오는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집 기와지붕과 이마를 맞댈 그런 구중궁궐을 지었으리라. 해가 지면 어둡고 적막한 초가삼간 외딴집은 밤마다 허물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짓고 허물었던 우리 엄마의 집은 못 이룬 꿈이 되었지만, “반지하 쪽빛 섬에서”, “비장의 달을 띄우고” 집을 짓는 어느 아비의 꿈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여기,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정답게 들려오는 환상 속 그림 같은 “내일의 집”을 짓는 사내가 있다. “널빤지마다 판상절리 기둥마다 주상절리’ 태초의 시간들을 칸칸마다 붙이고 끊임없는 풍파를 반듯하게 깎아 세운다. 목수는 “나의 팔뚝 아직은 힘줄 불끈 시퍼렇”다며 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조금만 더 견뎌달라고…. 이 지상 아비들의 절절한 모습이다. 아빠가 지어준 달빛 드는 집, 마루에서 뛰며 구르며 기뻐할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지금 쪽방 가득 달빛으로 깃든다. 그것도 공치는 날만 기회가 따르니 악물고 버티는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하루 만에 뚝딱! 꿈의 궁전을 지었을 것이다. 눈만 뜨면 솟구치는 아파트를 짓느라 막노동에 등살은 못이 박히고 짓물러도 정작 그 품삯으로는 내 집 마련은 어림도 없는 절벽 같은 세상이 아니던가. 집 없는 가장들의 “필생의 꿈”은 언제쯤 준공이 되려는지.

    이남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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