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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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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백산고가(白山古家) - 남택욱 (도의원)

  • 기사입력 : 2021-12-08 21: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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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에 와서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자금을 마련했던 백산상회의 운영자이자 독립투사였던 백산 안희제 선생 고가(古家)를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전통 가옥 형태를 말해 주는 백산 안희제 고가는 입산(설뫼) 마을에 보기 좋게 놓여 있다. 안희제 가옥은 생가라고 말하지 않고 고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고가는 출생 이후에 지은 집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태어난 집이 아니라는 의미다. 호암 이병철 생가하고는 다른 면이 있다.

    사대부 집안이란 것을 알 수 있듯 6칸 구조로 된 가옥은 마당이 널찍하게 자리 잡혀 있다. 안방에는 생전의 안희제 선생 사진이 걸려 있다. 큰방 3개, 작은방 2개 구조로 이뤄진 방 형태도 형태지만 방마다 문짝이 사방에 달려 있는 게 특징이다. 방마다 달린 문짝들은 다락으로, 부엌으로, 대청마루와 툇마루로 유사 시 긴급하게 빠져 나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가옥의 형태가 누가 설계했는지 일반인들로서는 알 수 없지만 방 내부 구조를 보고 나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김구 선생도 다녀갔다고 하는 이 가옥은 일반 가옥보다는 분명 다른 점이 있어 보여 궁금해 했는데 안내하는 사람으로부터 왜경을 피해 마루바닥으로 숨을 수 있는 비밀 공간도 마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간 천섬 만섬의 쌀을 수확하는 부농으로 살아왔지만 왜경을 피해 다닌 도망자 신세였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백산으로서는 이런 가옥 구조가 인신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방은 문짝이 많은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외풍을 막을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운 생활 위주의 가옥 형태는 아니다. 백산의 지혜와 총명함이 엿보인다.

    탐진 안씨의 집성촌인 입산 마을에는 아직도 백산의 자녀들이 살고 있다.

    백산 선생이 신학문 교육을 위해 설립했던 창남학교는 입산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현재 폐교가 돼 쓸쓸히 남아 있다. 입산은 부산면과 보림면이 합쳐져 부림면 소속이 됐다. 지금은 고즈넉한 마을로 변했지만 한때는 면사무소가 있었고 장터도 열렸었다.

    거리는 한산한데 오토캠핑장 사람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이 시끌시끌하다.

    고가 앞에는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을 하고 있는 구산(龜山)이 보이고, 뒤로는 장백산, 건너에는 유곡천이 장장하게 흐르고 있다. 풍수가 참 좋은 지대이다.

    나라를 걱정한 안희제의 발자취는 의령이 자랑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닌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백산 선생을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때이다.

    나부터 백산 선생 고가를 종종 찾아 그분의 발자취와 흔적을 되새겨야겠다. 다행히 백산 선생의 일대기가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백산기념관은 현재 부산에 설립돼 있는데 선생의 고향인 의령에 있었다면 하는 고가와 함께 둘러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고가는 가을 낙엽을 맞으며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남택욱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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