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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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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탈 진실’ 시대의 ‘내로남불’- 이재달(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1-11-21 20: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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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야흐로 일인 미디어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특히 대선 정국을 맞으면서 많은 사람이 일인 미디어를 통해 전문가 행세를 하며 정치 논평을 쏟아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처럼,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처럼 떠든다. 이런 일인 미디어 중에서 자신의 이념이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미디어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면서 기존의 이념은 고착화되고 더욱 강화된다. 이에 따라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과의 벽이 공고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좁아진다. 그래서 한때는 쌍방 소통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던 일인 미디어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장애가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토론을 통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이 원칙과 상반되는 현상이 농후해지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필리핀 독립 매체 래플러의 창업자 마리아 레사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페이스북은 허위 정보 차단에 실패했고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며 “페이스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일인 미디어가 활발한 것은 이 시대의 특징인 ‘탈 진실(post-truth)’ 현상과 맞물려 있다. ‘탈 진실’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진중권 전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진실이 큰 의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최근 대중은 듣기 싫은 사실이 아니라 듣고 싶은 환상을 요구한다”며 “사실은 수요가 없고 환상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인 미디어는 ‘탈 진실’ 현상에 편승해서 고객을 확보하고, 더 많은 고객을 유혹하기 위해 대중의 감정에 극단적으로 호소한다. 대중은 이러한 미디어를 선호하고, 열광적으로 환호한다. 그러면서 진실에서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멀어져 간다. 일인 미디어는 ‘탈 진실’을 토양으로 번성하고, ‘탈 진실’ 현상은 일인 미디어를 통해 강화되는 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빈번해진 ‘내로남불’의 작태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탈 진실’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타인에게는 가을 서릿발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가도 자신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한 이가 많다. 남의 행동은 불륜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같은 처지에 놓이면 로망스라고 우기는 ‘내로남불’은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언급되면서 국제 통용어가 되었다. 대선 정국에서 유력 주자들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난무한다. 그 의혹에 대한 변명 역시 ‘내로남불’이 많다. 그렇지만 대중은 제대로 검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맹목적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 시민이라면 진실 앞에 겸손한 자세로 ‘내로남불’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재달(MBC경남 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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