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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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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뭐하꼬] 창녕 ‘남지 개비리길’ 여행

바스락대는 가을과 발 맞춰볼까, 낙동강 벗삼아
남지읍 용산리~신전리 영아지마을 왕복 6.4㎞
낙동강 1300리 중 가장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

  • 기사입력 : 2021-11-18 21: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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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맞춰 정부가 국내여행 시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행을 장려하고 있는 가운데 늦가을 낙동강을 따라 강물의 출렁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벼랑으로 난 길을 따라 가족이나 연인들과 함께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 수변공원 용산마을을 떠나 양수장을 지나면 강을 따라 구불구불 벼랑을 더듬으며 나가는 남지 개비리길이 있다. 개비리의 ‘개’는 물가, 갯가의 개(浦)이며 ‘비리’는 벼랑을 이르는 이곳 토박이 말이다. 그래서 개비리길은 물가의 벼랑길이라는 의미다. 개비리길은 강물이 산을 안고 돌면 같이 돌고, 휘어져 들어오면 깊숙이 함께 물러나며 물길 따라 산과 강을 거스르지 않고 난 길이다.

    남지 개비리길과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과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은 남지읍 용산리에서 신전리 영아지마을까지 왕복 6.4㎞로 낙동강 1300리 가운데 가장 호젓하고 아름답다. 안전행정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국토종주 자전거길 20선 중 경남 구간 4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이 길은 수십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어가며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경을 가슴에 담아 올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걷는 시골 여행길이다.

    원래 남지 개비리길은 지금보다 산 위쪽에 있었는데 다니는 사람들이 가파른 산길을 버거워하면서 강쪽으로 내려앉게 됐다고 한다. 남지 개비리길의 시작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용산마을이다.

    낙동강변의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굽이굽이 좁은 길이 이어지는 남지 개비리길에는 절벽에 오솔길이 나게 된 전설이 있다. 옛날 영아지마을에 사는 황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못나고 작아 볼품이 없다는 뜻의 지방 사투리)’였다.

    힘이 약했던 조리쟁이는 어미 젖이 10개밖에 되지 않아 젖먹이 경쟁에서 항상 밀렸고 황씨 할아버지는 그런 조리쟁이를 가엾게 여겨 새끼들이 크자 10마리는 남지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 두었다. 그러던 어느날 산 너머 시집간 황씨 할아버지의 딸이 친정에 왔다가면서 조리쟁이를 키우겠다며 시집인 알개실(용산리)로 데려갔다. 며칠 후 황씨 할아버지의 딸은 깜짝 놀랐다. 친정의 누렁이가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렁이가 젖을 주려고 산을 넘어 온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살펴보니 누렁이는 하루에 꼭 한번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여전히 누렁이는 알개실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 사람들이 누렁이가 어느 길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누렁이 뒤를 따라 갔는데 누렁이는 낙동강을 따라 있는 절벽면의 급경사로 눈이 쌓이지 못하고 강으로 떨어지는 눈이 없는 곳을 따라 다녔던 것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높은 산 고개를 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개(누렁이)가 다닌 비리(절벽)’로 다니게 돼 ‘개비리’라는 길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남지 개비리길은 곳곳에 짐승이 다닌 흔적들로 땅이 파여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듯하다 가도 다시 강에서 높이가 30~50m는 족히 되는 벼랑길이 계속되고 벼랑 쪽에는 소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많아 충분한 그늘을 제공한다.

    깎아지른 절벽에 좁은 길을 따라 가노라면 원시자연을 만날 수 있는데 길 전체에 걸쳐서 마삭줄 군락이 좌우에 지천으로 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주엽나무, 물푸레나무, 자귀나무, 부처손 등 진귀한 풀과 나무가 쉼 없이 이어져 나오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으름덩굴이 소나무를 감싸고 올라간 풍경 등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이 스스로의 질서를 회복해 천연의 원시림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마삭줄 군락지.
    마삭줄 군락지.

    용산마을에서 얼마가지 않아 옥관자 바위가 새워져 있다. 옥관자 바위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남지읍 동포마을 박모씨가 수로 공사중 발견해 매일같이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를 드렸던 재령이씨댁 할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한 ‘옥관자 바위’를 만나 볼 수 있다.

    정화수 떠놓고 기도 드렸던 재령이씨댁 할머니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옥관자 바위’.
    정화수 떠놓고 기도 드렸던 재령이씨댁 할머니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옥관자 바위’.

    옥관자 바위를 지나 산으로 휘어진 길을 따라가면 대숲이 막아선다. 왕대들은 햇살을 몰아내고 충충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대숲 안에는 ‘회락정(回樂亭)’이라고 있었는데 낙동강물이 돌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해 그렇게 불렀다 한다.

    지금은 대숲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지만 회락정에서 내려다보면 강물이 굽이지며 돌아나가는 모습이 시름을 잊게 하는 빼어난 장소라, 이곳에 올라앉아 강물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밤이면 달빛 머금은 강물소리와 대숲이 바람에 나는 소리를 벗 삼아 음풍농월하던 최고의 명소였다고 한다.

    죽림공원 대나무숲 길.
    죽림공원 대나무숲 길.

    이 회락정은 몇년 전까지는 ‘회락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있지만 누군가 떼어 버리고 방치돼 있다가 4대강 사업 등으로 남지 개비리길이 알려지면서 귀곡산장으로 변한 회락재를 철거하고, 지난 2015년 개비리길을 정비하면서 ‘죽림 쉼터’로 새롭게 조성됐다. 이곳에는 땅속에서 두 그루가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부둥켜안고 삼밭의 쑥대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모양인 영험있는 팽나무 연리목이 있다. 이 연리목에 간절하게 기도하면 남녀간의 사랑이 이뤄지고 금슬 좋은 부부가 지극정성으로 자손을 기원하면 자손을 얻는다는 나무로 현재 대숲 사이에서 그 옛날 여양진씨 ‘회락재’의 왕성한 기운을 간직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원을 빌면 들어 준다는 영험있는 팽나무 연리목.
    소원을 빌면 들어 준다는 영험있는 팽나무 연리목.

    선인들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소일했던 이곳을 말끔하게 단장하면서 개비리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낙동강 칠백리 역사·문화·생태를 오롯이 담고 있는 창녕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은 지난 2015년 새롭게 단장됐다. 창녕군은 14억원을 들여 주차장, 화장실, 전망대, 쉼터, 안전난간, 편의시설, 안내판 등을 친환경적으로 설치했다.

    개비리길 곳곳에 세워져 있는 쉼터.
    개비리길 곳곳에 세워져 있는 쉼터.

    개비리길은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경을 가슴에 담아 올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걷는 시골 여행길이다.

    창녕에는 5개의 개비리길이 있다. 이방면 덤말리 개비리길, 등림 개비리길, 유어면 이이목 개비리길, 남지 개비리길, 부곡면 임해진 개비리길이 그것이다. 임해진 개비리길 인근 노리마을에는 전설 이야기에 전해지는 개의 기념비석이 새겨져 있다.

    영산면에 있는 만년을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다리라는 뜻의 정조 4년(1780년)에 처음 만들어진 만년교(보물 제564호).
    영산면에 있는 만년을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다리라는 뜻의 정조 4년(1780년)에 처음 만들어진 만년교(보물 제564호).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

    개비리길 주변은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와 영산면에 만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다리라는 뜻의 정조 4년(1780년)에 처음 만들어진 만년교(보물 제564호)가 있다.

    글·사진= 김병희 기자 kimb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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