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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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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거리로 나선 자영업자들 - 허충호 (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21-10-06 21: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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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나 사회문제를 논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공자 말씀’이다. 자왈(子曰)로 시작되는 많은 말들은 사실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하기도 하고 ‘아재’ 분위기도 나는 고색창연한 이미지가 앞선다. 아재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한 마디 인용하자면 국가에 관한 그의 철학이다. 공자가 살고 있던 시대는 강력한 전제 군주가 통치하던 때였으니 국가는 현대의 정치체계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공자는 ‘정치의 요체는 백성들을 모두 배불리 먹일 수 있는 풍요로운 경제와 외적의 침입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튼튼한 국방력,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라고 설파했다. 이들 중 두 가지를 버리고 하나만 택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세 번째인 ‘민신’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신뢰 없이 바로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로 다른 끝단을 향해 팽창하는 우주처럼 극단적 현상이다. 이는 2020년 8월의 통계청 자료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임금노동자는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1만3000명 줄어든 가운데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고용 구조에 놓인 한시적 노동자는 17만7000명이나 감소했다. 여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인 152만3000원에 달했다.

    우려했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많은 자영업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결국 23년간 맥줏집을 운영해왔던 한 부지런한 자영업자를 극단으로 내모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이어졌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직원들에게 업소 지분을 나눠주고 요식업계에선 드물게 주 5일제를 시도하고 연차 휴가를 도입하기도 한 열린 마인드의 업소 사장님은 그렇게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열정을 쏟아 세운 탑은 2년 전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사실상의 영업 제한으로 맥없이 무너졌다. 장사가 삶의 전부였다는 그가 선택한 이 비극이 과연 그 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를 추모하며 분향소로 발길을 옮겼던 수많은 행렬도 아마도 동병상련 이리라.

    97년 한국을 ‘경제 지옥’으로 내몬 IMF사태는 1997년 3분기 47만 명 수준이었던 실업자를 1999년 1분기 175만명으로 늘렸다. 98년 1개월여 동안 도산한 기업 숫자만 3300개에 이르렀다. 자식을 키울 수 없어 보육원에 맡기고도 모자라 일가족이 연탄불을 피우고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1997년 한 해 9000여명 수준이던 자살자는 1년 후에는 1만 2000명을 넘어섰다. 모두 빈곤과 양극화가 몰고 온 이 시대의 아픔이었다.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에는 어떤 시대가 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종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코로나와 동거’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관도 만들어질 개연성이 높다.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관계가 단절된 극단적 개인주의와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수적 국제 사회로 재편될 개연성이 높다.

    여기서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군집의 가치를 생각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딱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한 주체는 없었다. 외환 위기의 중심에 서있던 정부나 내실보다 외형 불리기에만 치중했던 대기업, 1p라도 더 높은 예대마진만 좇아 부실 대출을 남발했던 은행이나 외화를 물 쓰듯 했던 일부 국민들 모두 내 책임은 없다고 발뺌했다. 국제적인 흐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강변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간난(艱難)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도 그러리라 본다. 일은 벌어졌는 데 책임은 없는 구조, 그게 정치의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 무신이면 불립이다.

    허충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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