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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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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가상세계와 사람-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1-09-29 20: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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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에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였는데, 공인인증서 기간이 만료되었다며 계좌가 열리지 않았다. 당장 거래내역을 살펴봐야 했기에 부랴부랴 인증센터로 접속해서 공인인증서를 새롭게 발급받았다. 그런데, 인터넷 뱅킹에 접속하려니, 새롭게 발급받은 공인인증서가 뜨지를 않는다. 다시 인증센터로 들어가 보니 새롭게 발급 요청한 공인인증서는 이미 발급되어 있었고 그걸 확인하고 인터넷 뱅킹 접속을 시도하면 그 창에는 새롭게 발급된 인증서는 보이지 않아서 접속을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은행 콜센터로 전화를 했다. 콜센터 직원은 본인임을 확인하고 차분하게 문제점을 듣더니 “인증서가 발급되었네요”라고 까지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왜 뱅킹 접속이 안 되냐는 질문에 “고객님이 발급받은 인증서는 금융인증서인데, 이용하는 인터넷 뱅킹은 공동 인증서로 로그인이 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차~싶었다. 급하게 인증서를 발급받으면서 금융인증서인지 공동 인증서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나이 드신 어머니가 아이들 어릴 때 아이들과 자주 갔었던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에 혼자 햄버거를 먹으러 갔는데, 주문 방식이 모두 키오스크로 바뀌었다는 거다. 엄마는 키오스크 앞에서 여러 번 주문을 시도했는데, 키오스크 이용 방법을 잘 몰라서 결국 햄버거를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미 장성한 딸에게 전화해서 그 일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이제 끝났나 봐”라고 했다는데, 꼭 그 기분 같았다. 일종의 좌절감과 당혹스러움.

    세상은 급변하고 편리해지면서 단순 업무는 기계로 대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이 일상으로 들어오다 보니 가상세계, 메타버스가 뜨고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내 아바타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놀이, 업무, 소비 등을 하는 것이다. 이게 뭐 인기가 있겠나 싶었는데,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좋은 게임 중 하나인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가 바로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경우다. ‘입양하세요’라는 게임은 가상공간에서 내 아바타가 펫을 키우고 펫에게 필요한 물품을 소비하며 아이템이나 펫을 서로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유튜브와 로블록스 같은 가상공간에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가상세계에서 처리될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기기와 가상세계의 구현은 빠르고 편리하고 비 대면, 온라인에 익숙한 시스템이라는 강점은 있으나, 사용방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너무 낯설다. 그동안 아이한테서 ‘입양하세요’ 게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들을 때뿐이고 이해하지 못해서 돌아서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또 되묻게 된다. 이미 일상화되어 있는 디지털 기기인 키오스크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법이나 자녀가 휴대폰으로 보낸 승차권을 못 찾는 어른들도 꽤 많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디지털 기기 앞에서 좌절감과 당혹스러움을 겪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문명의 기기들이, 그리고 가상세계에서 일상적인 업무의 대부분이 처리될지도 모를 미래가 사람을 골탕 먹이거나 좌절감을 주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익숙하지 못한 세대에 대한 배려와 포용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술의 발달이, 그로 인한 문명의 발달이 눈부시게 빠르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일부 재판도 화상재판으로 시행되기도 하는 시대에서, 판사도 AI로 대체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빅 데이터와 통계로 판단을 받으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러한 데이터와 통계로도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사건마다 다 사연이 다르기에, 인간이 살면서 겪는 각자의 문제들이 다르기에 사건마다 솔로몬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신속함과 편리함이 인간성을 담보해 주진 않는다. 아마도 나는 가상세계가 일상화되더라도 현실세계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살아갈 듯싶다.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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