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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⑬ 부산에서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 설립

[1부] 또 하나의 가족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⑬ 부산에서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 설립
대한민국 첫 설탕 생산공장 1953년 부산에 서다

  • 기사입력 : 2021-09-24 0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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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철은 회고록 호암자전에서 왜 제조업을 하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밝혔다. “국민들이 매일 사용하는 제품을 수입에만 의존하면 국가 경제의 자립이나 경제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제조업을 통한 국내 산업이 확산되어야 한다. 국산품 제조를 통해 가격은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제조업이 설립되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기술 축적으로 경제와 산업 활동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병철은 6·25전쟁이 끝난 후 한국 사회에서 어떤 물건을 생산할 것인가를 선택하기 위해 제조업 실태에 관해 사전 조사에 들어갔다. 종이 생산의 제지 분야, 항생물질의 제약 분야, 생필품의 설탕 분야가 주요 검토 대상이었다.

    이 세 가지 종류는 한국 내에서 생산시설이 전무한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설탕, 페니실린, 종이로 압축되었다.

    종이 소비는 국민 문화 수준의 평가이고, 의약품은 국민 건강의 필수 제품이며 설탕은 국민 식생활의 필수품이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이 시기 한국경제의 현실은 자본과 경영, 기술의 문제가 있어 생산시설을 설립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적지 않은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야 했다.

    이병철은 세 가지 물품 중 하나를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결심한 후 이 분야에 앞선 기술력을 가진 일본의 기업에 자문을 구하였다.

    제조업 실태조사 후 설탕으로 품목 결정
    1953년 8월 부산 전포동에 제일제당 설립
    1960년 11월까지 초대 사장 맡아 운영
    통조림·제분·조미료 등 사업 다각화 시도
    1965년엔 대표 브랜드 ‘백설표’ 붙여 판매

    1967년 5월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산업전람회 풍경. 제일제당, 말표 고무신, 도라지 위스키 등 추억 속 제품 광고가 눈에 띈다./제일제당/
    1967년 5월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산업전람회 풍경. 제일제당, 말표 고무신, 도라지 위스키 등 추억 속 제품 광고가 눈에 띈다./제일제당/

    # 설탕, 페니실린, 제지업 중에서 하나를

    일본의 미쓰이물산(三井)에 설탕, 페니실린, 종이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건설 비용과 설비 비용을 산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 종류 중 제약 분야의 페니실린은 가장 유망해 보이는 사업이었으나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제지업 역시 그러했다. 결국 이병철은 이중 시급하고 국민이 매일 먹어야 하는 식품에 비중을 두어 제당 제조업 즉, 설탕을 택했다.

    설탕은 원당이란 액체를 가공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었다. 원당이 원조물자로 국내에 대량 공급되고 있었고, 당시 설탕은 종이와 페니실린보다는 단기간에 생산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설탕 수요는 나날이 늘고 있었으나 설탕을 만드는 공장은 한 군데도 없었다. 마침 정부의 수입대체 공업화의 기업 활동 지원 정책도 실시되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결과 이병철은 설탕 제조업을 결정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 창업 당시 제일제당 경영진

    이병철은 1953년 4월, 부산대교 옆에 있는 삼성물산 사무실 한쪽에 제당회사 설립을 위한 사무소를 설치했다. 발기인을 모집하고 분주하게 인허가 기관을 찾아다녔다. 1953년 8월 1일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공장 부지는 전포동 742에 1500평 규모를 확보했다. 주주는 이병철 27.5%, 조홍제(효성그룹 창업주) 15%, 허순구(이병철 매형)와 허정구(LG그룹의 공동창업주 허만정의 장남)가 각각 10%씩 주식을 보유했다.

    제일제당이 설립된 1953년 8월부터 1960년 11월까지 초대 사장은 이병철이었다. 조홍제는 줄곧 부사장으로 있다가 이병철의 뒤를 이어 1960년 11월부터 1962년 11월까지 2대 사장을 하였다.

    허만정의 장남 허정구는 1953년 8월부터 1955년 5월까지 상무이사로, 1955년 5월부터 1960년 11월까지는 전무로 근무했다. 설립초기의 감사는 조성제였다. 설립 때부터 1955년 10월까지 근무하였는데 여러 자료로 볼 때 조홍제의 동생으로 추측된다. 이병철의 매형 허순구는 1955년 5월부터 1962년 2월까지 감사를 지냈다.


    1953년 최초로 생산된 설탕 포대. 마름모 속의 CS는 제일제당 상표로 Cheil Sugar의 약자이다.

    1958년 5월 제일제당에서 생산한 삼성표 밀가루.

    1965년 4월 제일제당 설탕 신문광고. 당시 600g 소매가격이 68원이다.

    1970년대 제일제당에서 생산한 멸치다시다 등 각종 조미료./제일제당/

    #제일제당 회사이름의 뜻

    이병철은 제조업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회사명을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로 했다. 삼성이라 하지 않고 제일로 작명한 이유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제일이라는 이름이 알기 쉽고, 부르기 쉽다는 이유이다. 두 번째는, 제일(第一)이라는 한자의 뜻은 제일 앞선, 첫 번째라는 뜻이다. 제일제당은 한국에 최초로 설립된 생산 공장이다. 첫 번째 사업이 아니라 제품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첫 번째가 되자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공장이 완성되고 첫 순백의 정제당이 쏟아져 나온 날이 1953년 11월 5일이다. 이병철은 이 날을 제일제당 창립기념일로 제정했다.

    1953년 첫 생산된 설탕을 포대에 넣고 바느질로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다.
    1953년 첫 생산된 설탕을 포대에 넣고 바느질로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다.

    # 제일제당 얼굴 백설표 탄생

    한국 최초의 설탕공장 제일제당이 생산하기 전까지 설탕은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설탕은 일상생활 필수용품으로 생산을 시작하자마자 판매는 대성공이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삼백경기, 삼백산업의 활황기라고 한다. 삼백산업이란 세 가지 흰색과 관련된 사업으로 제당, 제분, 면방직이다.

    제일제당은 삼성이 근대 생산기업으로 면모를 갖추어가는 첫걸음이자 상업 위주에서 시작한 기업 운영이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한국 경제사의 주요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1958년 이후 제당시장은 공급과잉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정부의 수입대체공업 육성정책으로 1954년 동양제당, 한국제당, 1955년 삼양사, 1956년 금성제당, 해태제과, 대동제당 등 여러 기업이 설탕제조 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이들 공장은 제당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였지만 한편으론 경쟁체제를 가져와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경쟁 속에 제일제당은 설탕 중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였다. 1956년 4월, 포항 구룡포의 통조림 공장을 인수하였고, 1957년 10월에는 제일제당 공장 안에 밀가루를 만드는 제분공장을 설립해 1958년 4월 삼성, 월세계, 미인의 상호를 붙이고 제일제당 밀가루를 생산, 판매했다. 1965년 4월에는 제일제당 생산품인 설탕, 밀가루, 조미료 등에 ‘백설표’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였다.

    # 백설표 주세요, 다시다 주세요

    1965년 제일제당 생산품 대표 브랜드로 ‘백설’이 지정되었다. ‘백설’은 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설탕의 상표이기도 하다. “설탕주세요”, “어떤 회사제품 설탕을 드릴까요”가 일반적인 대화인데 “백설표 주세요”하면 상점 주인은 제일제당 설탕을 손님에게 드렸을 정도로 유명 제품이 되었다.

    1975년 11월, 제일제당에서는 조미료 ‘다시다’를 출시했다. “조미료 주세요” 대신에 “다시다 주세요”. 맛을 낼 때는 “다시다 좀 넣어라” 할 정도로 다시다는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었다. 제일제당은 1999년 삼성그룹에서 법적 분리되어 CJ 제일제당그룹에 소속되었다.

    <이병철의 한마디> 이익을 얻고자 하려거든 손해 보는 일도 반드시 마음에 새겨라.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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