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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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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점등點燈 - 김경옥

  • 기사입력 : 2021-09-23 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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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 1층 목욕탕 입구 연탄 한 장 벗하며

    발 모양 구두 틀에 서너 개 못과 망치

    구두약 까만 손톱이 간간이 분주한데


    딸 아들 통신비에 치매 모친 요양비까지

    바람벽 기대앉아 마감날 챙기자니

    굽 갈고 흙먼지 닦는 낡은 신이 향기로워


    미생未生의 신발 끝에 이름 모를 등을 달면

    세상사 엇갈린 길이 하나둘 밝아오고

    붙박고 앉은 자리가 극락 같은 저녁 답


    ☞ 출근을 하다 보면 빌딩을 돌면서 닦을 구두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고, 그 수거된 구두를 닦는 사람이 있다. 한때는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던 호시절이 있었다. 양복 입은 신사 숙녀들도 운동화가 대세인 요즘, 구두수선 집을 지나다 보면 일거리가 줄어든 게 확연하다. 땅 위의 세상이 이러할진대, 땅 아래 사정은 어떠할까? 김경옥 시인이 ‘점등’을 밝혀 들고 그 살림을 총총히 옮겨왔다. “지하 1층 목욕탕 입구 연탄 한 장 벗 삼아” 인사하듯 말문을 뗀 이 표현은 엉덩이만 겨우 붙인 비좁은 공간을 연상하게 한다. 그렇지만 불평하기보다 “딸 아들 통신비에 치매 모친 요양비까지” 마련하는 일이기에 “굽 갈고 흙먼지 닦는 낡은 신이 향기”롭다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기도 많은데 자신의 직업이 마냥 즐거울 수 있겠는가. 지출에 미치지 못한 수입에 애태울 때가 한두 번일까! 그럴수록 수선하는 망치질과 먼지 닦는 손길은 바삐 움직인다. 드디어 터지고 닳아 찌그러졌던 구두의 주름이 팽팽해지고 반짝반짝 빛이나니 비로소 ‘미생未生의 신발 끝에 이름 모를 등’이 켜지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세상사 엇갈린 길이 하나둘 밝아오고/ 붙박고 앉은 자리가 극락 같은 저녁 답”을 맞게 된다. 이렇게 평화롭게 시조는 마무리가 되지만 잔잔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 얼굴이 오롯이 그려진다. 똑 똑 똑, 그 망치 소리는 어느 가장이 생을 살아가는 발소리는 아닐까!

    꽃길이든 가시길이든 삶의 터전을 걸어온 사람들의 신발을 자신의 손으로 쓰다듬어 위무해준 오늘도 그에게는 점등點燈의 하루였으리.

    이남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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