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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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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박꽃- 박은형

  • 기사입력 : 2021-09-09 08: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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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의 단문이어서 흰, 태생이 후렴이어서 흰, 들키지 말라고 아니 들키라고 흰, 될대로 되라고 문틈에 끼워 놓는 조바심이라서 흰, 등대처럼 한 송이로 무심해서 흰, 꽉 들어찼음에도 자꾸 쏠리는 눈자위라서 흰, 모르게 져 버리는 미혹이라서 흰,

    당신이라는 단 한 번의 미지.


    ☞ 박꽃의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달빛 아래 밤에만 피어나는 꽃이어서 낮에는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박꽃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의 흰색 꽃으로 담장 위나 초가지붕 위에서 피어야 제멋이지요.

    “저녁의 단문이어서 흰, 태생이 후렴이어서 흰” 박꽃. 내 어린 시절 초가지붕 위에 빛나던 박꽃을 생각합니다. “모르게 져 버리는 미혹이라서 흰” 박꽃을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미지라서 흰 박꽃. 누군가, 그리운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박꽃을 생각합니다.

    그리운 그대는 늘 “당신이라는 단 한 번의 미지”입니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아리송해지는 미지라서 더 그리운 당신입니다. “꽉 들어찼음에도 자꾸 쏠리는 눈자위라서 흰” 당신입니다. 박꽃이 하얗게 피는 계절입니다. “들키지 말라고 아니 들키라고 흰” 계절입니다. 미지라서 그리운 당신. 미지라 그래서, 그래서 더 그리운 당신. 아무 것도 들키지 않는 흰, 박꽃의 계절입니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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