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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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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미역의 전쟁- 김승희

  • 기사입력 : 2021-09-02 08: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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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수처럼 울부짖는 바다

    맹골수도에서 미역 캐는 할머니

    물이 빠진 두 시간 동안

    바위에 붙은 미역을 신속하게 캐야 한다

    당장, 지금 당장!

    미역은 바위에 악착같이 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뿌리도 없는데 뿌리가 바위에

    낫 같은 것을 가지고 파도와 파도 사이에 얼른 캐야 한다

    발이 바위에서 미끄러지고 손은 낫을 들고 벌벌 떤다

    악착같은 미역귀

    시퍼런 미역귀


    당장, 지금 당장!

    미역을 캐야 한다

    바닷물이 밀물로 밀고 들어와 목까지 잠기기 전에

    파도와 파도 사이

    어서 빨리, 바위에 붙은 저 파란 미역귀를


    ☞미역 전쟁이 살벌하다. 바위에 붙은 악착같은 미역귀, 시퍼런 미역귀, 또 그것을 캐내려는 손과 발도 악착같다. 뿌리 없는 건 서로 매한가지, 목숨은 둘도 셋도 아닌, 하나일 뿐! 바닷물에 휩쓸리기 전에 당장, 지금 당장! 신속하게 캐야 한다. 사투 중인 전쟁터가 악명 높은 맹골수도라니 상상은 배가 된다. 청정 자연산 미역 맛은 또 어쩔 것인가? 맛도 문제지만 그것 팔아 자식들 공부시킨 돈맛은 어쩔 것인가?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떠오른다. 탈레반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곳 척박한 땅에는 양귀비가 자라고, 무기가 자라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인정사정없이 자라고 있다. 거대한 파도와 파도 사이 어떤 결말이 날 것인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쟁터 아닌 곳이 없다. 유희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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