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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코로나 시대가 부르는 고향의 봄- 김일태(시인,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 회장)

  • 기사입력 : 2021-08-31 21: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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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태 시인,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 회장

    달포 전 이원수문학관에서 ‘고향의 봄 기념 사업’ 2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꼭 20년 전 창원시와 시의회, 지역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힘을 모아 창원의 문화 도시 이미지와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고향의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확정한 날에 맞추어 개최한 행사였다. 비록 코로나 19 거리두기와 방역지침을 지키기 위해 창원시와 지역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분들, 그리고 고향의 봄 기념 사업 관련 인사들, 이원수 선생의 유족 중심으로 열린 소규모 행사였지만 그 뜻은 깊었다.

    2001년부터 시작한 고향의 봄 기념 사업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이원수 선생과 ‘고향의 봄’이 갖는 문화 자산적 가치를 활용하여 ‘삭막한 공업 도시 창원’을 ‘동심 가득한, 따뜻하고 풍요로운 문화도시 창원’으로 바꾸기 위해 고민과 연구를 거듭하면서 각종 사업을 펼쳐왔다. 그래서 지난 20주년 기념 행사는 그간의 성과를 점검하는 동시에 이원수 선생과 ‘고향의 봄’에 대한 현재와 미래 가치를 다시 발굴하고 확산 시키기 위한 결의의 자리이기도 했다.

    혹자들은 말했다.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더불어 고향에 대한 개념도 크게 바뀌어 어려울 때 위안과 안식을 주던 ‘고향의 봄’ 노래의 가치도 달라져 가고 있다고.

    코로나로 인해 평범한 일상마저 무너진 이 시대에 ‘고향’과 ‘고향의 봄’ 노래가 가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2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우리는 그 답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기념 행사의 끝에 어린이 중창단이 부르는 ‘고향의 봄’을 누가 제안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조용조용 따라 불렀다. 행사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자주 들은 ‘고향의 봄’인데 오늘은 따라 부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우리는 가슴이 먹먹해졌는가? 일제의 암울했던 시기에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는 노래로, 분단 이후 남북의 공통적인 정서를 담은 통일의 노래로, 산업화 시대에는 망향의 노래로, 외국에 나가 사는 동포들에게는 향수를 달래며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던 노래가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진 지금 다시 우리에게 위안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고향의 봄’은 왜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할까? 현실적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공간 같기도, 또 곧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그리움의 공간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향은 이상적인 꿈의 낙원이 아니다. 샹그릴라도 유토피아도 니르나바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다. 아프고 외롭고 힘들 때만 보이는 공간이며 일상이 건강하고 편안할 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일제의 핍박 아래에서 우리가 오기를 바랐던 고향의 봄은 탄압 없이 자유로운 소박한 일상이었고, 분단 시대에는 오순도순 피붙이끼리 정이 오가는 행복한 가정이었고, 산업화 시대에는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삶이었다.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담지도 않고 그저 남으로부터 해코지당하지 않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인정이 오가는 일상적인 안식의 공간이다.

    요즘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공간도 근심 걱정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편하게 먹고, 보고 싶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나 거리낌 없이 정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코로나로 지친 우리들의 희망이 바로 ‘고향’ 같은 일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의 봄’을 부르며 다시 먹먹해지는 것이다.

    고향의 봄 기념사업 20주년을 지나면서 다시 확신한다. 이 땅에 문화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동심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원수와 ‘고향의 봄’이 갖는 가치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삶이 힘들 때마다 ‘고향의 봄’을 나직나직 불러보시라. 주문처럼, 우리가 원치 않는 가운데 찾아온 이 암울하고 부조리한 시대가 슬그머니 지나가도록.

    김일태 (시인,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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