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1년 11월 30일 (화)
전체메뉴

문학 속의 국수, 문학 속의 마산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⑨
[1부] 또 하나의 가족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간식·주식으로 즐겨먹었던 국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

  • 기사입력 : 2021-08-27 09:35:14
  •   
  • 국수,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일까? 이 소박한 것은 무엇일까?

    이병철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무역업 외 제조업으로 ‘별표국수’를 생산했다. 대구 삼성상회 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문시장이 있다. 이곳에는 아직도 국수요리만 전문으로 하는 오래된 가게가 수십곳 밀집되어 있다. 가게마다 찾는 손님이 많아 국수의 매력이 어디까지인지 놀라울 뿐이다.

    현재의 불종거리. 85년 전, 이 신작로를 따라 백석이 첫사랑 난이를 만나기 위해 구마산역에서 불종거리를 거쳐 어시장 선창까지 걸어갔다./이래호/
    현재의 불종거리. 85년 전, 이 신작로를 따라 백석이 첫사랑 난이를 만나기 위해 구마산역에서 불종거리를 거쳐 어시장 선창까지 걸어갔다./이래호/

    1936년 이병철이 북마산에 ‘협동정미소’를 설립하고 첫 사업을 시작할 때(5편 참조), 구마산에는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야기가 있어 이병철과 국수, 국수와 문학, 문학과 마산으로 스토리를 구성해 보았다.

    우리 일상의 음식 재료인 ‘국수’를 소재로 씌어진 시, 수필 등 문학 작품이 있다. 1936년 1월, 지금의 마산 6호광장 인근에 세워진 구마산역 대합실 입구로 사자머리 숱을 가진 훤칠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역 광장을 지난 그의 발걸음은 지금의 마산 불종거리로 향하고 있었다.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마산 어시장 부근 선창(여객선 터미널)으로 가는 중이었다. 이 분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시(詩) ‘국수’를 지은 ‘시인 백석’이다.

    공이 위에 올라가 거꾸로 매달려서 국수를 뽑는 풍경이다.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
    공이 위에 올라가 거꾸로 매달려서 국수를 뽑는 풍경이다.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

    〈국수〉 - 백석

    (중략)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은 마산항을 이용해 통영에 갔다. 1936년 1월 23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통영’ 시의 첫 구절에 ‘구 마산’이 등장한다./조선일보/
    백석은 마산항을 이용해 통영에 갔다. 1936년 1월 23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통영’ 시의 첫 구절에 ‘구 마산’이 등장한다./조선일보/

    백석과 경남의 인연은 곳곳에 있다. 백석은 통영에 거주하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서울에서 구마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따뜻한 남쪽의 항구도시 마산과 통영을 다녀간 후 1936년 1월 23일 조선일보에 ‘통영’이란 시를 발표하였는데 첫 시작이 ‘구마산의 선창에선’이다.

    그리고 창원의 봉림산 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철길에서 본 ‘창원도’, 첫사랑 난이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해 다시 쓴 ‘통영(서병직씨에게)’을 비롯 ‘고성가도’, ‘삼천포’ 등 경남의 도시를 제목으로 한 남행시초 4편을 남겼다. 백석은 통영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진주에 들러 촉석루도 둘러보았다.

    백석 시인의 청년 시절 회자되는 이야기 중 웃지 않고 넘길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 권번 출신들이 있는 요릿집 ‘등아각’에서 일어난 ‘진주에서 노래하고 술마신 밤’ 이야기이다. 지면관계로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가게에서 국수를 뽑는 국수틀, 분틀이라고도 한다.
    가게에서 국수를 뽑는 국수틀, 분틀이라고도 한다.

    # 생활 속의 국수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밀가루와 국수 등은 주식이 아니고 잔치나 특별한 날 먹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귀한 국수도 일제강점기에는 서민들의 밥상에 자주 올랐다. 그 까닭은 1930년대 후반 일본은 전쟁에 대비해 쌀을 중심으로 군량 확보가 필요했고, 쌀을 대체하기 위해 일반인에게는 혼식을 장려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는 시구로 유명한 시 ‘너에게 묻는다’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안도현이 지은 ‘백석평전’의 글에서 국수 관련 내용을 인용했다. 백석이 1930년 함경도 국수집을 겸하는 산골 여인숙에서 하루를 묵었다.


    〈산숙〉 - 백석

    여인숙이라도 국숫집이다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목침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국수이야기를 한다


    국숫집에다 여인숙을 겸해 장사를 하는 이 집에서 손님이 묵는 방에도 밀가루포대와 국수 분틀이 있다. 함경도 산골의 전형적인 풍경과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함경도 국수와 지금 국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수는 1930년대 농촌 밥상에 자주 올라온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하숙집 배고픔을 국수로 달래다

    정주 오산학교 100년사에 국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오산학교가 전국적인 명성으로 학생 수가 늘어나자 기숙사에 다 수용하지 못했다. 학교 주변에 하숙집과 음식점, 잡화점 등이 생겨났다. 학교의 하루 일과로 오후 5시경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에 거주하지 않는 학생은 집으로 돌아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각자 야간학습을 한다. 야간학습시간이 되면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하숙집, 자취집을 순시하고 감독했다.

    밤 9시쯤 감독교사가 순시하고 지나가면 학생들은 하나둘 하숙집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간다. 밤이 깊어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는 것이다. 돌이라도 씹어먹을 십대 후반의 나이에 하숙집에서 주는 밥으로는 기나긴 겨울밤의 허기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학생들이 밤마다 탈출을 감행하여 즐기는 것이 국숫집 혹은 중국음식점의 호떡이었다. 오늘날 치킨, 떡볶이, 순대, 족발 등의 야식과 비교가 된다.

    # 밀가루 3형제, 장남은 국수

    밀가루 3형제 국수, 칼국수, 수제비와 관련, 한두 가지 웃고 울고 싶은 추억은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정부지원품으로 밀가루가 배급됐다. 이를 활용한 칼국수와 수제비는 집에서 간편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국수는 반죽과 건조과정 등이 있어 가정에서 만드는 것보다 별표국수처럼 완성품을 구입해 간식과 주식으로 부담없이 먹었다. 이병철이 국수를 생산한 것도 이런 시대적 환경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찰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부른다. 국수는 힘든 수행에 지친 스님들도 웃게 만드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국수는 그 면발의 생김새 덕분에 장수와 인연, 자손의 번영과 희망을 상징한다. 중국인을 처음 만나면 만두를 대접하면서 “우리 이렇게 알차게 이야기하자” 그리고 후식으로 국수를 대접한다. “국수처럼 우정이나 협력관계를 오래 오래 간직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에는 국수 종류만 100가지가 넘고 조리법도 다양하여 ‘백면(百麵)은 백년학습(百年學習)’이란 말이 있다.

    1936년 100권 한정판으로 출판된 백석의 첫 시집 ‘사슴’. 2014년 경매시장에서 7000만원에 거래됐다./한국학중앙연구원/
    1936년 100권 한정판으로 출판된 백석의 첫 시집 ‘사슴’. 2014년 경매시장에서 7000만원에 거래됐다./한국학중앙연구원/

    # 시인 백석

    2012년 문학평론가 75명이 뽑은 단행본 중 한국 대표시집으로 김소월의 ‘진달래꽃’, 서정주의 ‘화사집’에 이어 백석의 ‘사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선정됐다. 근대서지학회가 100권의 시집을 선정했는데 1936년에 출판한 백석의 ‘사슴’도 선정됐다. 백석 시인의 ‘국수’는 2009년 중고등학교 개정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산숙에서 국수집 풍경을’, ‘야반에서 메밀국수를’ 등 우리 일상의 음식재료를 대상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36년 1월 한정판 100부로 발행한 시집 ‘사슴’ 원본이 2014년 경매시장에서 세계문학박물관 건립을 준비하는 문학 애호가에게 7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래 호 ㈜차이나로컨벤션 대표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