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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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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차별보다 특권에 주목할 때-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1-08-24 20: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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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 정국에서 평등 관련 정책을 내놓는 후보들을 보면 주로 차별에 초점을 두고 있고, 특권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특권은 주어진 사회 구조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동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일상에서 누리는 특권은 주로 노력과 무관하게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자신은 특권으로 여기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어진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동되는 줄도 모르고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일 때 누군가에겐 그것이 가혹한 차별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흐르는 물결을 따라 내려가며 노를 젓는 사람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지 않지만, 그 물결을 거슬려 노를 저어야 하는 사람에겐 그 물결의 흐름이 차별의 배경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정, 정의, 능력주의 등을 말하려면 우선 숨어있는 특권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특권은 차별과 함께 있는데도 차별에 비해서 훨씬 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특권은 추상적인데다 공정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고 당사자들이 인정하려 들지 않아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에 차별은 구체적이어서 지각되기 쉬운 데다 차별 받는 당사자들이 표출하기 때문에 특권에 비해서는 잘 드러난다.

    요즘은 먼지 차별(Microaggression)도 알아차릴 정도로 차별을 식별하는 의식이 향상되었다. 먼지 차별은 먼지처럼 미세하게 일상생활 속에 남아있는 차별을 말한다. “장애인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할 수 있습니다.” “피부가 한국 사람 같습니다.” “여자보다 더 꼼꼼하십니다.” 이러한 장애인, 이주민, 젠더에 대한 일상적인 표현에서도 편견, 차별이 미세하게 묻어있는 먼지 차별이 있다면 밝혀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먼지 차별의 대척점에 있는 먼지 특권(먼지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지만 먼지 차별과 유비하여 사용하고자 함)들은 아직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쪽 다리가 약간 짧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다른 사람의 진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빠르게 다리를 옮기다 보니 항상 신발 속의 양말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장애인과 같이 지하철을 타는 다른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먼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 문화, 일상이 누군가에겐 장벽이 된다는 것이 인지되어야만 자신이 가진 특권을 알게 되고 이면의 차별도 인식하게 된다.

    먼지 차원에서 말하자면 누구든지 일상생활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고,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특권이나 차별이 바위 덩어리처럼 자리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대선 후보들이 사회적 약자의 피해에 관심을 갖고 ‘차별 금지’ 관련 공약들을 그들의 이념에 따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사회적 큰 이슈들이 되는 차별 금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먼지 특권과 먼지 차별이 작동되는 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차별 발생-차별 금지 정책’ 식의 단편적인 처방만 반복되기 쉽다.

    이제는 차별에만 렌즈를 맞추던 시각을 넓혀서 비 가시적으로 특권이 존재하는 방식을 눈여겨봐야 할 때라 생각된다. 심리학자 타텀(Beverly Daniel Tatum)은 특권은 공항의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 위에 있는 것처럼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보상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나이, 성, 혈연, 지연, 학연, 인종, 종교 등이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하는 사회라면 그들이 우선 특권을 인식하여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하고 제도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특권을 읽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공정과 정의, 차별 금지를 외쳐도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희생 시키고 그 이상의 권리를 누리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특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권리나 혜택이 지나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할 때다. 물론 약자들의 권리의 부족에 대한 차별 외침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겠다.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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