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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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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제 청년들은 비를 노래하지 않는다- 양미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7-29 19: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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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장마는 꽤 늦게 시작되었다. 기상청에서는 39년 만의 7월 장마라고 한다. 장마가 늦어지면 사람들의 불쾌지수도 그만큼 올라간다. 기온이 오른 상태에서 높은 습도와 눅눅한 환경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비를 낭만의 대명사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나 노랫말의 주인공처럼 일부러 비에 젖어 걷던 기억은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세대에 즐겨 불렀던 60~70년대 트로트에도 비는 인기 있는 소재였다. 7080 세대의 노래 중에도 비에 관한 노래는 많았다. 배따라기의 ‘비와 찻잔 사이’는 1982년에 나온 노래로 가사와 곡이 매우 낭만적이었다.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죠./그대와 나 또 이렇게 둘이고요./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할 말을 잃어 묵묵히 앉았네요./지금 창밖엔 낙엽이 져요./그대 모습은 낙엽 속에 잠들고/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할 말을 잃어 묵묵히 앉았네요./그대 모습 낙엽 속에 있고/내 모습은 찻잔 속에 잠겼네.’

    비를 매개로 하여 찻잔과 낙엽과 그대가 한자리에 어우러지며 애증의 묘한 뉘앙스를 서정적으로 그린 가사다. 당시 비 오는 날 카페에 가면 늘 들을 수 있던 곡이었다. 7080의 영원한 전설 강인원 권인하 김현식이 89년도에 부른 노래 ‘비 오는 날의 수채화’도 잊히지 않는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엔/초콜렛색 물감으로/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랜/보라색 물감으로/세상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이 노래도 호불호 없이 젊은이들이 마냥 좋아했던 노래다. 덜(?) 젊은 나도 청년들 틈에 끼어 지나간 내 청춘을 되살리곤 한다. 그 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노래가 우리네 삶에 비의 선율을 흐르게 했다. 슬픈 이별과 짝사랑의 애절함, 미처 이루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 등.

    나이 탓인가. 요즘에 와서 비는 낭만은커녕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는 생각도 든다. 비를 보고도 정서적 감응이 더딘 만큼 느낌 또한 메말라서인가. 그런데 나이가 아니라 환경도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요즘 젊은이들은 비를 낭만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스스로를 비하했다. 그러다가 취업과 주택을 보태고는 오포 세대라더니 희망, 취미 인간관계까지를 포기한 칠포 세대로, 그러다가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한 N포 세대라고까지 한다. 비가 오면 아르바이트 나가기도 귀찮다는 젊은 세대에게, 비를 보고 낭만을 얘기하자면 과하게 표현해 가슴에 염장 지르는 거나 다름없겠다.

    희망이 있어야 낭만도 따르는 법. 청년들에게 연애란 단순한 사랑놀이가 아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키우고 삶의 목표에 돌진하는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기에 사랑의 쟁취는 삶의 목표 달성과 동의어다. 사랑이라는 ‘희망’이 가능할 때 그에 따른 낭만도 가능하다. 짧은 장마 끝나자 불볕더위다. 비가 낭만이라면 태양은 희망이다. 청춘들의 가슴속에 비온 뒤 태양처럼 희망이 솟구치기를 기원한다.

    양미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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