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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11) 김해 봉황예술극장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 주민에 의한 열린 무대

  • 기사입력 : 2021-07-27 21: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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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이태원동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뜨는 동네는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김해에도 ‘봉리단길’이 있다. 카페와 예술공간이 들어서면서, 핫플레이스가 된 봉황동이다. 그 배경 뒤엔 봉리단길을 가꾸는 주민들의 땀이 있었다.

    김해 봉황예술극장 곽지수(51) 대표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김해 황세 장군과 여의 낭자의 사랑 이야기에 매료돼 2016년 봉황동에 정착했다.

    “보통 김해하면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더라고요. 여의와 황세 이야기를 접한 후 어린이 인형극으로 만들어 보자 결심했죠. 실제 자료를 모으려 봉황대 공원을 돌아다니며 황세바위와 여의각을 찾기도 했어요. 그 전에 극작가와 연극배우를 병행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거든요. 주민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인형극 ‘철의 나라에서 만난 여의와 황세(2018)’는 빛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2016년 봉황동에 정착한 곽지수 대표
    지역예술인·주민들과 봉리단길 알리며
    2018년 행안부 마을공방 육성사업 선정
    올해 5월 개관 후 연극 등 공연 선보여

    매주 토요일 지역예술단체 주축 무대 펼쳐
    동네 주민들 이야기 무대로 채워지기도
    지원금 없이 주민·상인들과 운영하며
    상상이 실현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김해 봉리단길 봉황예술극장에서 곽지수 대표가 무대 입구 커튼 사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해 봉리단길 봉황예술극장에서 곽지수 대표가 무대 입구 커튼 사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 대표는 제이제이(JJ)창작예술협동조합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 결성된 JJ창작예술협동조합은 경력단절여성으로 구성된 극단 ‘직장동료’로부터 출발했다. 2014년 극단 직장동료가 결성된 당시만 해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 한창이었다. 대모하던 어르신들을 대신해 밭과 과수원의 잡초를 제거하는 봉사를 갔다가, 뉴스에 보여 지는 사안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대본을 쓰고 사람들을 모아 연극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살아 있는’ 이웃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친해지면서 재미난사람들협동조합, 영화사 봉황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봉황예술극장은 이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2018년 행정안전부의 마을공방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올해 5월 29일 문을 열었다.

    김해 봉황예술극장 무대와 객석.
    김해 봉황예술극장 무대와 객석.
    김해 봉황예술극장 무대./성승건 기자/
    김해 봉황예술극장 무대와 객석.

    “봉황예술극장이 생기기 전엔 야외에서 모든 공연을 소화했어요. 당시 동네 사람들이 ‘극장은 곽 배우 같은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봉황예술극장은 원래 독립극장으로 지으려 했는데, 나중엔 소극장으로 만들어졌어요. 주민들의 배려로, JJ창작예술협동조합이 운영을 맡게 됐고요. 코로나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정재근 부대표와 함께 책임감 하나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연습과 공연을 무사히 해내는 것에 행복을 느껴요.”

    곽 대표는 현재 유튜브 채널 ‘봉황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봉황방송국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되어 허물어지게 될 봉황동 일대를 알리기 위해 개설됐다. 지금은 ‘봉황TV’로 채널명이 바뀌었다.

    곽지수 봉황예술극장 대표./성승건 기자/
    곽지수 봉황예술극장 대표./성승건 기자/

    “2018년 4월 주택을 샀는데, 8월에 철거한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집 마당서 공연하며 노후를 보내려던 꿈이 산산조각 난 거죠. 모든 걸 포기하려던 차에 주민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어요. 알고 보니 저랑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30명 넘게 계시더라고요. 이들과 ‘억울함을 풀어보자’해서 연대하게 됐는데, 목소리를 내는 소통 창구가 유튜브가 된 거예요. 사연을 듣기 위해 주민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녔어요.”

    하소연을 담으려던 영상엔 어느새 주민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봉황동의 산 역사가 기록된 셈이다.

    김해 봉황예술극장.
    김해 봉황예술극장.
    봉황예술극장 건물 외벽 설치작품.
    봉황예술극장 건물 외벽 설치작품.

    “내 집이 누군가에 뺏겨 철거된다는 슬픔보다 동네 사람들과 나눈 추억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려 철거 내용을 담은 연극을 만들어 헌정했어요. 그 공연이 ‘봉황대 연정’이에요. 연극이 끝나고 주민들이 ‘우리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손잡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살면서 한 번도 어렵지 않은 적은 없잖아요? 돌아보면,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늘 곁을 지켜줬더라고요.”

    봉황예술극장은 주민들이 만드는 공간이다. 지원금 없이 운영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상인들이 만든 봉황대협동조합과 의기투합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창고에 자리한 복합기와 냉장고도 주민들의 사비로 마련했다. 간혹 익명으로 도움을 주는 분들도 있다고.

    이 공간은 주민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오디션으로 선발된 단원들은, 매주 월요일 전문 연극배우들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 중이다.

    6월 12일 열린 부산·김해 록밴드 ‘톰 밴드’ 공연.
    6월 12일 열린 부산·김해 록밴드 ‘톰 밴드’ 공연.
    6월 26일 열린 뮤지컬 앙상블 더비즈 공연./봉황예술극장/
    6월 26일 열린 뮤지컬 앙상블 더비즈 공연./봉황예술극장/

    주민들의 호응이 좋았던 공연은 트로트를 소재로 한 ‘미치고 뽕짝 뛰네(2020)’. 극장이 없어 동네 목욕탕 옆 주차장서 선보인 연극이다. 구경하던 할머니가 “머리털 나고 처음 연극을 봤는데 너무 재밌다”고 한 말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고. 올 가을께 창작극 ‘반짝 반짝 작은 별’과 어린이 뮤지컬 ‘빨간 장화를 선물한 고양이’를 선보일 계획이다.

    “봉황동이 길고양이가 많다고 들은 터라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요. 극 중 사람들이 빨간 장화가 마법의 힘을 가졌다고 믿어요. 실제로는 힘이 없는데, 믿으니까 희망이 실현되는 거죠. 배우들이 직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무대도 기획 중이에요. 객석과 무대에 경계가 없다는 게 특징이에요. 코로나로 지친 주민 분들이 이 공연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으면 합니다.”

    연극 외에도 영화를 비롯한 클래식, 국악, 뮤지컬 등 여러 장르의 무료 공연도 선보인다. 매주 토요일 김해지역 예술단체가 주축이 되어 ‘봉황-어게인’이란 이름으로 무대를 펼친다. 현재는 코로나로 선착순 15명만 입장 가능하다. 오는 31일 오후 5시 AM(All Music) 밴드의 무대가 7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곽 대표는 봉황예술극장이 주민들이 상상한 일이 실현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어떤 분이 극장 앞을 지나가면서 이 공간이 뭐하는 곳인지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주목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늘 있었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런 분들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이 무대 자체가 인생이 펼쳐지는 삶의 공간이 되길 바라요.”

    연극 같은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봉황예술극장에 가보자. 여기선 누구나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곽지수 봉황예술극장 대표가 무대 입구 커튼 사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곽지수 봉황예술극장 대표가 무대 입구 커튼 사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글=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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