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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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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도 사람이 산다 (14)시즌Ⅱ 움직임 ⑨ 거제도해초쑥영농조합

쑥쑥 크는 ‘쑥 아이템’… 지역민도 함께 쑥쑥 큽니다

  • 기사입력 : 2021-07-15 20: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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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직 버리고 낙향한 윤석봉씨

    2년 전 지인 5명과 조합 만들고

    일운면 3300㎡ 개간 쑥 재배 시작


    ‘쑥대밭’은 쑥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거친 땅을 가리켜 정신없이 어지러운 모양을 말할 때 쓰인다. 부정적인 단어지만 달리 보면 쑥의 질긴 생명력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2년 전 거제도가 고향인 6명이 모여 만든 거제도해초쑥영농조합은 그들이 심고 가꾸는 쑥과 같은 단체다. 조선업이 주력산업인 거제도에서 지역민과 함께 거친 땅에서 뿌리를 내려 다함께 새로운 농업·관광문화를 일궈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조합원들이 쑥을 수확하고 있다./해초쑥 영농조합/
    조합원들이 쑥을 수확하고 있다./해초쑥 영농조합/

    ◇수학과 교수, 쑥 농부 되다= “거제는 조선소가 있다보니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었는데 이제는 지역민이 살 수 있는 또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죠.”

    부산 동의대 수학과 교수였던 윤석봉(58) 대표는 수학과 폐과로 고향인 거제로 내려와 학원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관광산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30여년 넘게 고향을 떠나 있다오니 전에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느꼈고, 동시에 언제 또 조선경기가 어려울지 모르는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생기면서다. 거제대 관광과 학부생으로 입학한 그는 이론을 공부하면서도 실무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사업 아이템을 오래도록 고민했다. 6차 산업의 성공사례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거제 지인들과 함께 힘을 합쳐 6명이 전국 곳곳을 답사했다. 미나리, 뱀 사육까지 아이템 목록에 올랐지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2019년 봄 거문도에서 본 쑥이었다.

    윤 대표는 “여수에서 2시간 반을 배를 타고 가야하는 거문도지만 20여년 전부터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을 브랜딩해서 지금은 재배하는 170여 가구 모두 수익도 많고,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며 “잡초없이 쑥만 빽빽하게 자라도록 만드는 밀식 작업만 거치면 1년에 5~6번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답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조합원들은 거제 일운면 망치리 양지마을에 3300㎡ 규모의 빈 땅을 개간 후 산과 들을 돌며 캐낸 거제 쑥을 심었다. 거문도에서 받은 쑥, 함평도에서 구매한 하우스 쑥 씨앗도 있었지만, 거제에서 자생한 쑥이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확한 쑥을 깨끗하게 세척하는 모습./해초쑥 영농조합/
    수확한 쑥을 깨끗하게 세척하는 모습./해초쑥 영농조합/

    조선소 퇴직자 등 40농가와 계약

    이들이 수확한 쑥 전부 매입

    차·분말 등 가공식품으로 출하


    ◇같이 잘 사는 쑥 농사= 쑥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더 있다. 농사를 짓는 데 큰 설비나 재료비가 들지 않고, 쉽게 재배할 수 있으며, 수확시기를 제외하면 많은 노동력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얼마 없는 거제 지역 기존 농민들도 작물에 추가해 심기 쉽고, 농사가 처음인 이들에게도 접근성이 좋다. 조합원들이 1년여 쑥을 키우고 난 후 자신감을 얻어 지난해 연말부터는 재배지 일부를 분양하고, ‘거제 해초쑥’이라고 이름을 지은 후 쑥 재배를 홍보하러 다니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조선소가 없고, 해풍이 좋은 거제 남부 일운면, 동부면, 남부면, 둔덕면 등 청정한 지역 5곳에서 40가구가 쑥을 재배하고 있으며 여기서 재배된 쑥은 윤 대표가 모두 사들여 제품으로 가공한다. 계약한 농가 중 일부는 조선소 퇴직자들도 있다. 지역 농산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4월 지역사회공헌형 거제시 예비사회적기업에 선정됐다.

    윤 대표는 “20~30년 넘게 거제에서 일한 분들이 나와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은데, 쑥 농사는 제가 판로를 보장하고, 재배법이 쉬우며 개간할 만한 빈 땅도 많아 열심히만 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보장돼 추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조선소 이외의 산업이 빈약한 거제에 농가와 가공공장을 늘려 일자리 등 같이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다. 아직은 사업 초기라 기기 구입 등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쑥 재배자분들을 조합원으로 모시지 못하지만 향후 사업이 안정화되면 더 많은 지역민들과 함께 일을 꾸려나가는 조직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쑥 재배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재배자들은 대체로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이순애(51·거제시 연초면)씨는 “지난해 연말에 망치 지역 재배지 일부를 받아 처음으로 농사를 해봤는데 평소에 봄쑥을 캐러 다니기도 해서 낯설지도 않고, 몸은 고되지만 뿌듯하고 크게 어렵지 않았다”며 “밭 일을 같이 하면서 지역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하는데 향후 거제 쑥으로 지역활동 펼칠 때 적극 도우려 한다”고 밝혔다.

    전국 떡집 등에 출하하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해초쑥 영농조합/
    전국 떡집 등에 출하하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해초쑥 영농조합/
    급속냉동 후 포장한 거제 해초쑥./해초쑥 영농조합/
    급속냉동 후 포장한 거제 해초쑥./해초쑥 영농조합/

    ◇쑥의 변신= 조합이 위치한 가공센터에 들어서면 은은한 쑥향이 번진다. 조합원이 개발한 국내 유일 쑥 함량 90% 분말형 쑥차에서 나는 향이다. 올해 4월에 완공된 58㎡ 규모의 크지 않은 공장 안에 세척기기, 압착기기, 급속냉동고, 진공포장기를 갖춰놓고 있다.

    40여 농가에서 수매한 쑥들은 여기서 깨끗하게 세척하고 데쳐 일부는 2kg 단위로 급냉시켜 전국의 떡집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해초쑥잎차, 쑥분말차 등의 가공제품을 만드는 데 쓴다. 지금은 기기가 구비되지 않아 거제 농산물가공지원센터에 가서 해야만 하는 티백 제작이나 분쇄작업도 올 하반기에는 공장 내에서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거제도해초쑥영농조합의 가공쑥은 초록빛이 선명하고, 이물질 없는 좋은 품질을 인정받아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면서 쑥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조합원 박영희(58)씨는 “쑥떡, 쑥버무리 등 쑥을 활용한 음식은 어릴 때부터 친숙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건강한 재료라고 소문나 쑥 와플, 쑥 호빵 등도 등장하면서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달려 전체 가운데 30% 정도는 베트남산, 중국산 쑥을 쓴다고 들었다”며 “거제에서 쑥 재배량을 늘려도 수요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고 밝혔다.

    쑥 분말을 용기에 담고 있는 모습.
    쑥 분말을 용기에 담고 있는 모습.


    쑥카페·체험 등 관광산업 연계해

    지역민과 같이 잘 살 수 있는

    콘텐츠 개발·운영이 목표


    ◇관광에도 쑥향기 입힐까= 조합은 농산물 재배와 가공은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을 염두해뒀던 만큼 쑥을 활용한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내년께 쑥라떼, 쑥차, 쑥떡 등을 즐길 수 있는 카페를 열 계획이다. 이 카페는 쑥과 마늘을 먹고 곰에서 사람이 된 단군신화 웅녀설화에서 모티브를 갖고 와 동굴을 인테리어해 이색적인 장소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여기서는 쑥 훈증, 쑥밭에서 하는 힐링 체험 등 관광객들이 쑥을 갖고 할 수 있는 갖가지 체험을 진행하게 함으로써 숙박까지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들은 공공기관들에서 인정받아 올해 1월 경상남도에서는 유일하게 관광두레의 예비 으뜸두레에 선정된 바 있다.

    이들은 지역민들과 힘을 합쳐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고, 함께 지역 콘텐츠를 개발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윤 대표는 “해초쑥을 활용한 체험이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도 지역민들과 함께 콘텐츠 개발과 일자리 창출에 힘쓰며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쑥 제품 개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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