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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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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② 이병철의 서당 가는 길과 한학 공부

[1부] 또 하나의 가족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② 이병철의 서당 가는 길과 한학 공부
흙담 너머 꼬마 이병철의 천자문 외는 소리 들리는 듯

  • 기사입력 : 2021-07-09 0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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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에 와서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고택을 보고 난 후 대부분의 방문객은 귀가를 서두른다. 그 고택만큼이나 의미있는 곳이 가까운 곳에 한 곳 더 있다.

    이병철 회장의 어린시절 흔적을 상상하고 싶다면 꼭 이곳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이 길은 5살의 이병철이 10살의 형 이병각과 함께 5년간 다녔던 길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이병철의 서당 가는 길은 100년이 지났다. 가족과 함께하든, 연인이 함께 걷든, 혹은 혼자서 걷더라도 ‘이병철의 서당 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걷기를 추천한다. 마치 5살 꼬마 이병철이 걸었던 것처럼. 어쩌면 이곳 오솔길은 주변의 풍경 때문에 느리게 가도록 만들어 줄 것 같기도 하다.

    이병철이 형과 함께 5년간 공부한 서당 ‘문산정’./이래호/
    이병철이 형과 함께 5년간 공부한 서당 ‘문산정’./이래호/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하던 중 갑자기 비가 내리자 함께한 아내는 신발을 벗고 걸으면서 비를 맞고, 비를 밟는 시인이 되었다. ‘비가 오면, 나는 가끔 맨발로 흙을 밟는다. 비가 내리는 문산정 가는 길은 갓 돌지난 아이 볼살처럼 부드럽다. 나는 솜처럼, 구름처럼 걸어 무지개를 찾는다. 아 아름다워라. 비맞은 오솔길 풍경, 아 좋아라, 발바닥을 노크하는 솔나무 잎들’.

    좁은 흙길도 있다. 도로는 차량 2대가 교차하기에는 약간 좁다.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주차장도 없다. 필자는 ‘이병철의 서당 가는 길’이 소개된 후 행여 찾는 자가 많아 의령군청에 민원을 넣어 이 오솔길을 더 넓히고 흙길까지 도로포장이 될까 무척이나 두렵다.

    ‘서당 가는 길’은 유년시절 이병철이 정곡 고택에서 문산정까지 다녔던 길이다. 의령읍내에서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이병철 생가 도착 전 1㎞쯤 좌측을 보면 문산사 가는 표지가 있다. 그렇게 큰 표지도 아니고 도로와 맞닿아 있어도 넓지 않은 시골 산길 입구라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계곡 시작 지점에 아담한 사찰 문산사가 있고 그 곁에 이병철의 할아버지 호 문산을 붙여서 세운 문산정 서당이 있다. 이병철이 한학을 공부한 곳이다.

    이병철의 서당 가는 오솔길. 숲터널 끝나는 곳에 탑과 문산정 담장이 보인다./의령군청/
    이병철의 서당 가는 오솔길. 숲터널 끝나는 곳에 탑과 문산정 담장이 보인다./의령군청/

    단일 건물로 단층 팔작 형태의 건축구조이다. 산속 입구라 전후좌우의 풍경이 고즈넉하면서도 고요함이 깊다. 작은 계곡의 물길이 문산당 정문 앞을 흐르고 있으며 이 사이를 아담한 돌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흙담으로 세워진 담장 안 아늑한 풍경의 문산정 앞에서 독자 여러분이 어릴 적 이병철이 하늘천, 땅지 천자문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기운을 받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이병철은 회고록에서 “어머니는 아침마다 천자문 책을 옆에 끼고 형과 함께 대문을 나서 서당 가는 모습을 늘 지켜보았다”고 가슴 뭉클한 회고를 하였다. 이렇게 소중한 이병철 관련 유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령군에서는 왜 이병철 고택 외 관심을 갖지 않았는지 조금 아쉽다.

    서당 가는 길과 문산정 서당은 의령이 가진 이병철의 몇 안되는 흔적지라 생각한다. 이병철 고택 안내판에 ‘이병철 서당 가는 길 - 문산정 가는 오솔길’을 표기를 해 놓으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더 나아가 월 1, 2회 정도라도 초등학생들이 스마트폰이나 전자게임에서 벗어나도록 천자문이나 논어를 가르치는 ‘가칭 이병철 서당’을 개설하여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정곡 고택서 문산정까지 좁은 흙길 걸어
    다섯살 때부터 5년간 형과 서당 다녀
    문산정은 아늑한 흙담 둘러싼 팔작 구조
    이곳서 배운 한학·서예 이병철에 영향
    회고록 표지 ‘호암자전’ 친필로 쓰기도

    친필로 쓴 회고록 호암자전./호암재단/
    친필로 쓴 회고록 호암자전./호암재단/

    # 이병철의 한학 공부

    이병철은 한일병합조약이 조인된 1910년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천석군 규모 큰 농사를 하는 부유한 집안에 2남 2녀의 막내이다.

    이병철의 할아버지 이홍석(호는 문산, 1838~1897)은 시문과 성리학에 능통한 유교학자이다. 아버지 이찬우(1874~1957)는 독립협회에도 관여한 개화적이고 선구적인 분이었다. 1914년부터 이병철은 형과 함께 이곳 문산당에 가서 천자문 등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서당은 지방의 사립 초등교육기관의 한 곳이다. 일본의 교육령 실시가 되기 전인 1920년대 까지 초등과정의 배움은 서당에서 한문공부가 일반적이었다. 첫 수업은 천자문의 가르침이 대부분이었다. 이어서 논어나 자치통감 등으로 난이도가 높아진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보통 3개월 정도 필요하는 천자문 학습에 1년 정도 걸렸다. 그러나 진도는 비록 늦었지만 기업경영이나 힘든 과정에 늘 즐겨보는 ‘논어’의 인용은 서당에 다니는 동안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고하였다. 이병철은 스스로 가장 많은 감동을 받고 필요로 한 책이 ‘논어’라 하였다. 정치인 김종필도 그의 증언록 ‘소이부답’에서 “본인 인생의 평생 가름침이 된 고전이 ‘동문선습’과 ‘논어’이다. 특히 논어해설은 성인이 되고 정치인이 된 뒤에 수시로 읽어 본다”고 하였다.

    약 5년간 서당공부를 한 이병철의 한학 실력과 즐겨하는 취미 중 하나인 서예도 이때 학습한 것이 중요한 밑받침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병철의 회고록 책표지 ‘호암자전’은 서예가 정하건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연습한 친필 서체이다. 실사구시의 학풍을 추구하고 유교에서 말하는 이용후생을 실천한 조부의 영향으로 이병철도 한학 공부를 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정하건 지도로 휘호 ‘기업제민’ 연습을 하고 있는 이병철./필묵도정/
    정하건 지도로 휘호 ‘기업제민’ 연습을 하고 있는 이병철./필묵도정/

    # 이병철의 형 이병각

    5살 차이가 나는 동생 이병철을 데리고 함께 서당에서 공부한 형 이병각은 마산에서 무학양조장도 경영했다. 이병철의 사업은 진주와 관련된 곳이 없는데 이병각은 해방 후 미군정시기 진주 칠암동에 있는 큰 전분공장을 불하받아 대주주로 진주에서 기업경영을 한 기록도 있다. 그 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개 이상은 먹어보았을 쭈쭈바, 돼지바, 빵빠레의 원조인 한국 최초 아이스크림을 대량 생산하는 삼강하드(현 롯데푸드)를 경영했다.

    유명 연예인 자녀가 출산한 국내 최초 여성전문병원 제일산부인과를 개원한 제일병원장 이동희 박사가 이병각의 아들이다. 제일모직 공장설립의 주도적 역할을 한 후 공장장으로 퇴임하고 커피 전문회사인 동서식품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세계최초의 1회용 믹스커피를 개발한 함안출신 함안조씨대종친회장 조필제가 사위이다.

    이병철 회장 개인 메모지에 적은 친필 글씨./필묵도정/
    이병철 회장 개인 메모지에 적은 친필 글씨./필묵도정/

    # 이병철의 서예 스승 정하건

    이병철은 송천 정하건 서예가로부터 1978~1985년까지 1주일 1회, 약 7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서예스승 정하건의 자전대담집 ‘필묵도정(도서출판다운샘)’에서 “이병철은 경청, 겸손, 공수레공수거, 인재제일, 성자필쇠 등의 글씨를 많이 적었다. 생신날에도 휴강하지 않고 수업을 받을 정도로 서예에 열정을 가졌었다. 대강이나 대충이 없었고, 주도면밀한 시간관리, 확고한 기업관을 갖고 계신 것을 느꼈다”고 소개했다. 농협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정하건 서예가의 글씨이다. 이병철의 글씨는 한 경매업체에서 3000만원에 낙찰된 적도 있다.

    부자 기는 생활 속에서도 받을 수 있다. 이병철 서당 가는 길을 걷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고, 논어도 꼭 한 번 읽어보자. 한자의 해독이 어려우면 한글판 논어라도 읽어보자.

    세상을 보는 새로운 지혜와 만족할 기운도 받을 것이다.

    <이병철의 한마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다. 신용은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아주 쉽다.

    이 래 호 ㈜차이나로컨벤션 대표
    이래호 (㈜차이나로컨벤션 대표)

    이래호 (㈜차이나로컨벤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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