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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말 엘리트 한 명이 10만을 먹여 살릴까- 이옥선(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1-07-04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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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대 맞을래?” 영화 〈4등〉에서 만년 4등인 초등학생 준호의 수영코치 광수는 매번 이렇게 묻는다. 맞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몇 대 맞을지만 말해보라는 거다.

    엄마는 피멍이 든 준호의 몸을 못 본 척 한 날 밤,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때린 수영코치 광수와 말리지 않은 준호 엄마만 가해자일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런데 학대 받는 아이 하나가 존재하려면 온 마을의 암묵적인 용인이 필요하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이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의 유령이다. 영화 〈4등〉이 이 문제를 스포츠로 푼 것은 경쟁의 결과가 바로 판시되는 스포츠의 특성 때문일 것이고, 엘리트주의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분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올해 초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학교폭력이 언론을 달구었다. 폭력을 행사한 선수나 지도자만 가해자였을까. 한 명의 ‘잘나가는 선수’의 성적이 다른 선수의 진학이나 진로를 좌지우지하고 온갖 물적 지원의 가부가 갈리는 현재 엘리트체육의 틀 속에서 이런 일은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 ‘한 명의 인재가 10만, 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고 이건희 회장의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체육계에서, ‘다 너 잘되라고 때리는 거야’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광수의 체벌은 애교에 가깝다.

    복숭아 한 개를 먹었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체중 조절에 실패한 벌로 사흘간 밥을 굶기고, 회식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새벽 1시까지 빵 20만원어치를 강제로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는 최 선수의 이야기는 한국 체육계에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집요한지 잘 말해준다.

    나는 우선 체육계에 ‘심리상담’의 영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단기간에 바꿔 갈 수 없는 문제라면 어루만지면서 가야 한다. 무엇보다 체육지도자 본인 또한 ‘폭력의 대물림’ 속 희생자였을 개연성이 크다. 심리치료도 골든타임이 있다.

    다행히 경상남도체육회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스포츠인권교육 체육지도자 과정’을 개설, 지도자를 대상으로 인권의식 교육과 선수와의 소통에서 심리상담기법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또 경남도는 오는 8월까지 도내 전 직장운동경기부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침 내년부터 도와 시·군 소속 체육지도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데, 이 분들께 심리상담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수료 시 자격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은 어떨까.

    성적과 진로가 중심인 상황에서 지속적인 관계 때문에 현실은 쉽게 가려질 수밖에 없으므로 ‘제3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현재 경상남도 심리상담서비스(with)가 있지만 더욱 접근 용이하고 상시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체육계 인권 현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안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옥선(경남도의원)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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