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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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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광장-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 기사입력 : 2021-06-09 19: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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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운데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다. 엄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그늘 밑에서 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광장은 아이들 차지다. 유치원이나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학원가기 전이나 학원까지 마친 후 삼삼오오 모여서 술래잡기나 축구, 줄넘기 등을 하며 뛰어논다.

    그런데 가만 지켜보면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한 명이 매일 같이 광장을 나와 동생들하고 게임을 하거나 놀이를 한다. 재작년 여름밤이었다. 다음날이 주말이라 아이들 대 여섯명이 집에 가지 않고 늦게까지 놀고 있었다. 그런데, 광장 뒤쪽에 있는 운동기구가 비치된 곳에서 평소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던 중학생 형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고 그 뒤로 같은 또래의 중학생인 남학생 세 명이 쫓아오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깜짝 놀라서 세 명의 학생과 한 명의 학생을 떼어 놓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모두들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평소 광장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중학생 형이 동급생들 사이에서는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날은 왕따를 당하는 그 중학생이 동급생 세 명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치다가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세 명의 학생은 학생대로 나머지 한 명이 자신들에게 먼저 욕설을 하며 언어폭력을 했다고 주장하였는데, 폭행 피해자인 그 학생도 자신이 욕설을 한 것은 맞다고 하였다.

    기왕에 학생들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으니, 언어폭력 부분에 대해 세 명의 동급생에게 사과하고 세 명은 한 명한테 신체폭력을 쓴 부분에 대해 사과하라고 시켰는데, 욕설을 했다는 한 명의 중학생은 고분고분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데, 세 명이 계속 난리를 친다. 심지어 세 명의 학생 중 제일 힘이 있어 보이는 한 학생이 “그냥 가지 어른이 왜 참견을 하냐”며 바닥에 침도 찍찍 뱉는다. 불량한 태도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조목조목 세 명의 학생들이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였으나, 세 명의 학생도 절대 굽히지 않고 말꼬리를 잡으며 계속 시비조로 대꾸를 한다. 결국 세 명의 학생들에게 “너희들 다니는 학교가 ○○중학교가 맞지? 몇 반이니? 오늘 여기서 아줌마가 목격한 내용을 학교에 전부 말해서 학교 폭력으로 신고 넣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슬금슬금 꼬리를 빼기 시작한다. 학교 폭력으로 가기는 싫었던 모양인지 학년만 밝히고 이름, 반을 절대 언급하지 않은 채 물러났다.

    이런 일을 겪고 주변 지인들에게 말하니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용감한 아줌마가 되었다. 요즘 애들 싸움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겪어보니 맞는 말이고 무슨 말인지 알겠다. 상황을 정리한 후에 제일 먼저 걱정된 것이 세 명의 학생들이 우리 아이 얼굴도 봤으니 앙심을 품고 광장에 다시 나타나 해코지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리고 피해 학생이 다음날 학교에서 어떤 앙갚음을 당할지도 적지 않게 걱정되었으니까. 다행히 폭행 피해를 당한 그 중학생은 다음날에도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았다고 하였고 여느 때처럼 광장에 나와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보니 그 말대로 해코지 없이 잘 넘어간 모양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학교 폭력 사건이 종종 있다. 학교 폭력은 고의성, 심각성, 계속성, 반성 및 화해 가능성 등의 기준을 두고 사안의 경중을 살피는데, 대다수는 사안이 그리 중하지 않다. 학교 폭력이라는 절차를 통해 가해자, 피해자를 가리고 절차에 따라 처분의 정도를 정해 적절한 보호 처분을 내리는 것이 간소하겠지만, 때론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부모 세대의 어린 시절에도 요즘 광장처럼 동네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아이들은 그때 서로 놀면서 사회화가 다 되었다. 미취학 아동부터 중학생까지 두루 어울려 놀았고 게임 규칙에는 승복할 줄 알았으며 잘하는 친구는 못하는 친구와 같은 편이 되어 형평성을 맞추었고 규칙을 무시하고 떼를 쓰는 친구는 그날 같이 놀지 못하지만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며 다시 함께 놀며 규칙이란 걸 지킬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광장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찾아보기 힘드니 사회화가 이루어질 기회가 그만큼 적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만들어지던 그 광장을 아이들이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나서서 광장을 지켜주길 바라본다.

    이수경(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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