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기자수첩] 한 가장(家長)이 떠난 후

  • 기사입력 : 2021-05-25 20:55:06
  •   

  •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서른 일곱 가장이 7년 넘게 일하던 일터로 여느 때처럼 출근해 일한 어느 수요일, 그는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김해 워터파크 야외풀장에서 수중 청소작업 중 직원 1명 사망.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 중.’ 기자는 이 한 줄로 요약되는 짤막한 기사를 썼다. 그 가장이 몸담고 있던 굴지의 회사는 이 기사를 접하자마자 그의 죽음을 공공에 알린 공공기관에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고, 이 항의에 그 기관은 사망사고 소식을 황급히 삭제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꼭 좀 밝혀주세요.”

    기자가 유족으로부터 사고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문자를 받았던 건 그 가장이 숨진 지 6일 후였다. 장례를 마치고 슬픔을 채 추스릴 새도 없었을 터. 남은 가족들은 가장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의문들을 ‘알아야만’ 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나서며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기도 하다.

    유족들은 ‘말을 아끼는’ 경찰과 고용노동부, 회사에 크게 무력감을 느끼고 답답해 했다. 기자 또한 말을 아끼는 그들로 인해 한 발자국 더 취재를 나가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유족은 기자의 손을 꼬옥 잡으며 다시 한번 똑같이 말했다. “꼭 좀 밝혀주세요.” 이 가장처럼 작년 한 해 동안 작업장에서 일하다 숨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는 전국에서 882명에 달한다.

    그 가장이 가족을 떠난 날이 2주에 다다를 무렵. 기자는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 사망사고 소식이 삭제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란 기사를 한 줄 쓰며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동시에 들어간 홈페이지에는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3명이 작업 중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차례로 올라와 있었다.

    한 가장이 떠난 후 남은 가족들이 보낸 글은 한참 동안이나 기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유족들은 “우리가 이렇게 나선다고 고인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고인과 같은 일을 하는 전국의 종사자들이 위험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의문이 풀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말을 아끼고 있는 여러 기관들이 유족을 아끼는 마음을 갖고 원인 규명에 더 분발해주기를 바란다.

    도영진(광역자치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도영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