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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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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칸소에 뿌리내린 미나리- 정이경(시인·경남문학관 사무국장)

  • 기사입력 : 2021-05-05 20: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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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윤여정씨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로 ‘미나리’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가 원산지인 미나리는 볕이 잘 들지 않고 습한 지역에서도 뿌리내리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제 전 세계의 빛을 누리게 됐다.

    영화는 당시 7살 소년이었던 감독의 유년시절을 담은 자전 영화로 80년대 미국 이민 1세대 한인가족의 ‘살아남기’는 정겹고 또 눈물겹다.

    대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한 채 오지의 시골까지 흘러들어와 말라빠진 토양에 물을 끌어와서라도 농사로 성공을 꿈꾸는 남편과 그것이 못내 불안한 아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영어도 변변찮은 외할머니(순자)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런 할머니와의 동거가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 손주들은 할머니를 은근히 무시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식구들은 저마다의 불안과 결핍을 안고도 끝내는 진정한 가족이 되려 한다.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결국에는 아칸소의 개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는 그 옛날 일제강점기 모래바람 불던 간도에서부터 하와이의 광활한 사탕수수밭을 거쳐 독일의 지하 광산까지 캐냈던 광부들까지, 그 어느 대지에서도 강인하게 뿌리내려 생명을 지탱해온 DNA를 가지고 있다. 미나리의 가족들 역시 자연의 척박함 앞에 굴복하고 불가항력적 재해에 속절없이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겪으면서도 가족은 서로 결합한다. 아픈 손자 데이빗을 품어 안으며 생명의 박동이 기적처럼 살아날 때 역설적이게도 할머니는 생의 기력을 잃어가고 삶은 그렇게 수레바퀴처럼 굴러간다.

    이 땅의 미나리들이 한국이 아닌 어디서라도 뿌리를 내려 살아남는 방식은 경이로울 것임에 틀림없다. 외국에서는 영원한 이방인 취급을 받고 한국에서도 이민자 취급을 받는 그들에게 영화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생의 고군분투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찬양한다. 미국 제작사가 만든 미국 영화이나 극사실적인 배경과 이야기 전개의 보편성에다, 한국인 배우들이 대부분 우리말로 연기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영화 미나리는 척박한 땅에서 피워낸 결실에 대하여 나는 진심을 담아 한껏 응원한다. 지난한 삶이 피워낸 그 끈질김의 승리에.

    정이경(시인·경남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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