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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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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애민 - 유명규 (글로벌 이순신 회장)

  • 기사입력 : 2021-04-27 21: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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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28일은 제476회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쳐있는 요즘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서로 간의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언론을 통해 가정에서 어린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 갑질한 사건 등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관심과 사랑하는 맘이 없기 때문이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자주 등장한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조카들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여 정읍현감 시절 식구들을 모두 거느리고 갔을 때 고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공은 남솔(濫率)이란 죄를 입을 지라도 자기에게 의지하는 조카를 버릴 수 없다고 했다. 공의 사랑은 가정을 넘어 부하들에게까지 이어졌다.

    부하를 사랑하지 않는 리더를 따르는 법은 없다고 한다. 부하를 위협해서 공포에 떨게 하면서 이끌지는 않는다. 직책을 과시하면서 혹은 권위를 억누르면서 부하들을 끌고 가는 리더는 바로 내려와야 한다.

    충무공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사랑과 체벌은 엄중히 했고,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엄하게 벌했다. 하지만 해전 중에 과실로 일어난 사건은 자신이 부하를 다스리는 통솔력이 부족해서라며 자신에게 과실을 돌렸다.

    1593년 초 웅포해전 중 총 7차례 공격으로 수많은 적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발포와 가리포 통선이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공명심에 서로 다투며 돌입하다 두 배가 서로 부닥쳐 그만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장병들의 해이해진 기강과 명령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 자세를 엄히 경고하는 훈령을 내리기만 하고 죄를 용서하고 벌하지 않았다.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의 군사를 부리는 방법이 좋지 못하고 지휘방법이 틀렸다며 죄를 기다리는 장계를 올리고 처벌을 기다렸다.

    웅포의 적들은 부산으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험한 곳에 웅거하여 배를 감추고 소굴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공격할 수 없었다. 육군의 지원을 받아야 적을 모조리 무찌를 수 있다며 육군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원을 받지 못했다. 수군 자체적으로 수륙작전을 펼쳐 공격하였지만 물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적은 웅천에 웅거하여 대응하지 않고, 우리 군은 더 머무를 수 없는 상황에서 화선(火船)으로 적선을 모두 태워 없앨 궁리를 하였으나 적이 궁지에몰릴 경우 최후의 발악으로 육지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화선으로 공격을 중지했다.

    충무공은 군공에 연연하지 않았다. 웅포해전에서 보듯이 부하들의 과실도 자신의 책임으로 죄를 청하였고, 백성을 위하여 군공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충무공 이순신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은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고,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애국·애민이었다. 이것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이유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유명규 (글로벌 이순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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