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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미얀마 거울 속의 한국의 얼굴- 정성기(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1-04-18 20: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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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나라 정치 사정에 이렇게 하루하루 관심을 기울이는 사례는 전례가 없어 보인다. 벌써 ‘미얀마 현상’이란 말이 돌고 있다. 군부 쿠데타 이후 70여일, 700여명이 군경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 와 있는 미얀마 근로자, 학생, 민주인사 등의 지인들이다. 국내 은행의 지점에서 일하던 현지인 한 명도 사망했다.

    국내 2만8000여명 미얀마 교민 중 경남에 2700여명의 근로자, 학생 등이 거주하고 있다. 3·15의거, 부마항쟁, 6월항쟁 관련 시민사회 단체-인사들은 미얀마 모습이 “1960년 마산 같다”, “80년 광주 같다”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경남신문〉은 관련 기획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고, 필자도 인터뷰에 참여한 바 있다. 김경수 도지사는 김주열을 거론하며 아웅산 수지 여사 석방 등을 촉구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례적으로 군용 물자 수출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한국의 이런 민주화 지원에 미얀마 국민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이고 있다. 태극기는 시위대의 공격을 피하는 부적이 되고 있는 반면, 중국의 오성기는 불태워지고 있다.

    그런데 미얀마 사정은 공부할 수록 복잡하며, 민주화는 장기전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위 열기가 식어가는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와 소수 민족 무장 단체 구성원 등이 참여한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유엔의 개입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불가능하다.

    국제적 연대 속에 지속적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돕는 것은 분명 우리의 크고 자랑스러운 과제다. 그런데 미얀마의 역사, 미얀마-한국의 관계라는 거울 속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며 성찰하는 일은 간과되고 있다. 몇 가지 사실만 짚어보자.

    한때 부유했던 미얀마는 한국(남한) 땅의 7배가량 영토와 원유, 가스 등 많은 천연자원을 갖고 있고, 한국과 유사한 5300만의 인구가 있다. 1960년대 초 이래 오랜 ‘불교사회주의 경향’ 군사 독재를 거치며 1인당 국내총생산이 겨우 1298달러(2018년)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이에 비해 6·25 이후 미얀마의 식량-쌀 원조를 받을 정도로 세계 최빈국 대열에 있던 우리나라는 피땀 흘려 산업화-민주화에 성공하였고, 이제 거꾸로 민주화도 경제도 원조하고 있다. 이런 기적 같은 현실은 이 나라 좌파의 역사-현실 관념을 반성하게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일제 강점기 시절, 버마인들의 원수는 영국 제국주의였다. 영국이 버마족의 나라와 다른 소수 민족 국가들을 통합하여 분할 지배한 것이 독립 후 소수 민족들(국가들)과의 내전의 뿌리요, 장장 60년 군사독재의 계기다.

    한국의 ‘군사독재’와는 배경, 성격이 크게 다르고, 민족 문제의 성격도 그렇다. 우리의 민족 문제-군사 독재와 관련된 미얀마-한국 외교 관계 상 결정적인 한 대목은 1983년 10월, 유혈 쿠데타로 집권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다수 고위 인사들이 희생된 ‘아웅산 테러’ 사건이다. 놀랍게도 북한의 소행임이 드러나자, 미얀마 정부는 사회주의 성향을 공유하며 친하던 북한과 단교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의 공산화 위협과 군사 독재의 폭압도 이겨냈다.

    여전히 분단-휴전 상태인 한국은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미얀마 국민들에게 등불 같은 존재가 되었다. 미얀마 시위대 젊은이들은 “쿠데타 세력에 굴종하면 북한처럼 된다, 민주화에 성공하면 한국처럼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현 정부와 ‘진보-민주 세력’은 미얀마 민주화를 지원하면서도, 일당 독재의 중국과 북한 앞에만 서면 비굴할 정도로 작아진다. 큰 자가당착이다. 미국 성조기 흔드는 ‘태극기 부대’는 많은 국민들에게 외면의 대상이다. 좌우파 모두 이념의 색 안경을 벗고, 삶의 현장에서 제대로 실사구시하면서 살 길을 찾아가지 않으면, 열강의 파워 게임 속에서 정작 대한민국의 운명이 위태롭다.

    정성기(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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