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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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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눔 프로젝트] (67)매일 라면 먹는 김해 세 자매

엄마 대신 쌍둥이 동생 돌보는 11살 세아의 꿈은 선생님
“어린이들 가르치는 일 해보고 싶어요”

  • 기사입력 : 2021-04-07 08: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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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3일 오후 김해에 살고 있는 세아네 가족들이 사례관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김해에 살고 있는 세아네 가족들이 사례관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날 라면만 먹여가지고...아빠로서 미안한 마음이 크죠.”

    김해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세아(11·가명), 3학년 세영(9·가명), 세진(9·가명) 세 자매는 매일 하루 한 끼를 라면으로 먹는다. 베트남 국적인 엄마는 혼자 경제생활을 하며 시부모님을 모시다 1년 전에 집을 나갔고, 올해 2월부터는 아이들이 보낸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는다. 띄엄띄엄 돈을 보내오고 연락도 됐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지원을 끊었다. 아빠 정영(50·가명)씨는 아파서 일을 못 하고 있어 영양가 있는 식단을 꾸릴 형편이 못 된다. 아침에 따뜻한 국물이라도 한 술 뜨게 하려는 마음에 식탁에 라면을 내민다. 정영씨는 지난 2016년 회사의 부도로 쫓겨났고 우울증, 불안장애와 고혈압에 손떨림이 심한 갑상선기능항진증까지 겹쳐 몸도 마음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어릴 때부터 고압적인 아버지의 폭력·폭언에 시달리면서 대인기피증이 생긴 탓에 일을 하면서도 힘들 때가 많았다.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서 심근경색을 앓는 아버지,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생활비를 대느라 카드값, 대출금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결국 지난해 파산신청을 해 면책을 받았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경매로 팔렸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연락이 닿지 않는 엄마의 수입이 집계되면서 기초수급대상자 신청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달 전 세아 엄마를 실종신고 하고 기초수급대상자 신청을 했다. 앞으로의 삶이 막막한 정영씨는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못 자 최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베트남 국적 엄마 집 나가 연락 끊겨

    아빠는 몸 아파 경제생활도 어려워

    지난해 파산… 아파트는 경매로 팔려

    엄마의 빈 자리는 아이들에게 더 크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먹지 못한 탓에 세 자매는 성장속도가 느렸다. 특히 막내 쌍둥이들은 말과 글이 또래들보다 늦은 편이라 정영씨의 마음은 미어진다.

    “세아 엄마가 일로 바빠지면서 쌍둥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 베트남 처제 손에 키워졌어요. 한창 언어를 습득해야 할 시기에 못했으니 언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고,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도 부끄러워서 자기소개를 못할 정도로 낯을 가렸어요.”

    집안의 정서적 안정감을 채워주는 건 세아양이다. 장녀로 엄마 대신 쌍둥이 여동생들을 돌보고 이른 나이에 아빠의 기댈목 역할을 맡고 있다. “엄마 실종신고도 하고…그래서 (마음이 아파요?)” 세아양이 끄덕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청소와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 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재잘되는 두 여동생과 티격태격 할 때는 아이의 모습인데, 똑부러지게 나무랄 땐 엄마로 빙의하고, 때때론 배움이 느린 둘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동생들 좀 가르치다보니 재밌더라고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동생 둘을 보살피면서부터 세아양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옆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생들이 가르쳐준 적 없다며 장난을 치니 “가르쳐줘도 안 듣잖아”하고 응수한다. 동생들은 또 맞다며 깔깔댄다. 이 장난기 많은 아이들의 웃음을 지킬 수 있을까. LH전세임대주택으로 이사를 앞둔 정영씨는 전에 없던 희망을 생각해본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밥을 먹이고, 학용품도 제때 사주고 싶습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도움주실 분 계좌= 경남은행 207-0099-5182-02(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남지회)

    △2021년 3월 3일 10면 ‘기울어진 집에서 바로 선, 태희의 꿈’ 경남은행 후원액 300만원 일반 모금액 9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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