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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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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구겨진 자존심- 김현수(KBS창원 보도국장)

  • 기사입력 : 2021-04-05 20: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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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덕수궁 돌담길이 있다면 진주에는 당연 진주성이 있다. 강낭콩보다 푸른 남강과 홀연한 의암, 그리고 절벽 위 우뚝 솟은 촉석루…. 가슴 뜨겁던 20대 시절, 지금은 얼굴조차 어렴풋해진 그녀와 진주성을 걸으며 나눴던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아련해진다.

    촉석루는 원래 국보였다.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면서 1956년에 국보에서 해제됐다. 국보의 영광은 8년뿐이었다. 이후 나랏돈과 진주 시민들의 성금으로 1960년에 촉석루는 새로 건축됐다. 당시 전국 최고 목수장인들이 총동원됐지만, 국보로 환원되지는 못했다. 원형대로 복원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전국 누각 가운데 촉석루가 보존이 가장 잘됐다고 말할 정도다. 평양 부벽루는 현재 북한의 국보로 지정돼 있고 밀양 영남루는 국보 아래 단계인 보물이다. 촉석루는 지방문화재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등급인 자료로 지정돼 있다. ‘지방문화재자료’ 대접이란 게 안동 고택의 화장실보다 못한 게 사실이다. 말 못하는 촉석루나 진주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오죽하겠나. 옛날부터 진주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하다. 경남의 중심이 진주라는 믿음도 확고하다. 창원에 있는 경남도청을 진주로 환원해야 한다는 진주발 언론 보도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진주 사람들에게 코로나19는 다시 한 번 자존심을 구겨지게 했다. 누적 확진자가 800명을 훌쩍 넘어 경남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물론이고, 창원보다도 많다는 통계에도 기분 나쁠 만하다. 진주 목욕탕 발 집단감염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진주의 목욕탕 수는 인구가 비슷한 양산이나 강원도 원주보다도 두세 배 많다. 목욕을 즐기는 것이 무에 비난받을 일이랴. 하지만 진주의 ‘달 목욕’ 문화는 낮은 수준의 집단 이기주의로 폄훼 받기까지 했다. 억울한 심정은 잠시 접어두자. 시간이 지나면 이것조차 잊히리라. 유독 진주에서 집단감염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되돌아볼 일이다. 지난 세월 자부심이 너무 앞서 내실을 다지는데 등한시하지는 않았는가. 잠시뿐인 저 벚꽃의 욕망처럼 짧고 화려한 명성에 도취한 것은 아니었던가.

    김현수(KBS창원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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