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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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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낙화- 박옥순(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1-04-04 20: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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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마당 가득했던 수선화가 졌다. 이른 봄까지꽃(봄까지만 피는 꽃이라는 토박이말)인 게다. 대신 명자꽃, 물앵두꽃, 자두꽃이 한창이다. 수선화와 같은 빛이지만 우리 집에 개나리는 없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들은 어느 노 교수의 말 때문이다. “개나리꽃 같은 사람은 되지 마라.”

    그 말이 묘하게도 잊히지 않더니 직함이 생기고 불러주는 사람이 늘어나니 더욱 또렷이 다가왔다. 도의원도 권력이라면 권력, 도민들에게 쓰일 때 잘 쓰였으면 가뭇없이(보이던 것이 아주 보이지 않는다는 토박이말) 사라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박수 칠 때 내려와야 한다는 말이었으리라.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앞다투어 질 때, 개나리꽃은 시들다 못해 거뭇거뭇해지도록 끝내 줄기에 매달려 있다. 노 교수의 말은 시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

    젊은 시절 나는 누구나 아는 약골이었다. 어디 한 군데 병이 있는 것은 아닌데 내내 아팠다. 원래 약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치인 생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어느새 강골이 되어 있었다. 요 근래 어디 아파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타인에게서 기를 받는 사람이 있고, 빼앗기는 사람이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나는 첫 유형인 셈이다.

    개나리꽃 생각이 난 것은 최근 몇 년이 시·도의원 박옥순으로서는 개화기가 아니었나 싶어서이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아니 반비례로 정치인으로서는 젊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들 ‘마음은 아직도 청춘’ 아니던가. 육체의 나이를 마음의 나이가 따라잡지 못하는 데서 인간의 비극이 탄생한다고 한다. 그 간극을 얼마나 발맘발맘(자국을 살펴가며 천천히 쫓아가는 모양) 좁히는가에 따라 개나리꽃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구분된다 하겠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의 소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생긴 대로 뻗치는데도 의연하고 기품이 있다. 봄비까지 오시는 날이면 마당 앞에만 나가도 절로 철학자가 된다.

    박옥순(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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