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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1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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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6) 창원 뱅뱅LP음악카페

레트로 감성 돌아가는 뉴트로 공간
음악다방 DJ로 청춘 보내며 옛 감성 LP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위안 주고자
2018년 창원 동읍에 LP카페 오픈… 팝·가요·클래식 등 LP판만 2만여장 넘어

  • 기사입력 : 2021-03-28 22: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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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직. 턴테이블에 바늘이 내려앉자 잡음이 들린다. 빙글빙글 추억의 LP판이 돌아간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 음악을 고르고 듣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다림이다. 느리지만 신선한 즐거움이 있는, 창원 동읍 뱅뱅LP음악카페의 풍경이다.

    안승명 뱅뱅LP음악카페 대표가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마을 입구에 위치한 음악카페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안승명 뱅뱅LP음악카페 대표가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마을 입구에 위치한 음악카페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안승명 대표가 운영하는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다. 19살 때 DJ를 시작한 후, 2018년 지인의 권유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를 열었다. 그는 사춘기 시절 대중 팝에 심취되어 음악다방 DJ로 청춘을 보냈다. LP판을 모으면서 자연스레 음악이 삶의 일부가 됐다. LP판만 무려 2만5000장이 넘는다. 팝 음반 1만장을 비롯해 국내가요 6000장, 클래식 5000장, 영화음악·옴니버스 커팅판을 4000장 넘게 소장하고 있다.


    창원 뱅뱅LP음악카페 내부. /김승권 기자/

    LP판을 모으기만 한 건 아니다.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최근 창원시청소년교향악단에 5000장을 기증했다. 대중가요만 아는 아이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어한 김호준 상임지휘자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수많은 앨범을 어떻게 찾고 선곡할까. 모든 앨범은 찾기 쉽도록 자음과 알파벳 순으로 분류했다. 사연과 신청곡을 받으면, 멘트와 함께 음악을 띄워준다.

    “음악이 좋아 음악다방에서 보조 DJ로 일을 시작했어요. 원래 메인 DJ가 있었는데 보름 만에 그만두면서, 우연한 기회에 메인 DJ가 된거죠. 결혼과 동시에 레코드 가게를 운영했어요. 1980년대 아날로그 끝자락에서 디지털 문화를 접하게 됐죠. 인터넷이 발달하니 시대가 바뀌더라고요. 손님들에게 레트로 감성이 담긴 LP음악으로 위안을 주고 싶어 LP카페를 열게 됐습니다.”


    창원 뱅뱅LP음악카페 외부. /김승권 기자/

    과거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 현장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축음기와 LP판이 등장하면서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대표 음원 재생기가 되면서, 앨범을 산다는 개념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파일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바야흐로 스트리밍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아날로그’를 찾는다는 건 ‘옛 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갈망이 투영된 이유가 아닐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김정호 ‘하얀나비’ 일부’

    어느덧 DJ 외길을 걸어온 지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정호의 노래 ‘하얀나비’는 그가 손님에 들려준 음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꼽는다. 서른 셋,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가수의 삶 때문일까. 공허한 노래 가사가 되려 마음을 묵직하게 채운다.

    태엽식 전축인 옛날식 축음기, 고전 레코드집 등 1970~80년대 물품 빼곡
    음악 들려주는 공간 넘어 문인·음악인 등 예술인 문화사랑방 역할도
    “삶이 곧 음악… 쉼과 즐김이 있는, 사람과 음악 연결하는 장소로 기억됐으면”


    창원 뱅뱅LP음악카페 내부. /김승권 기자/

    “여기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어르신이 계셨는데, 김정호의 ‘하얀나비’라는 곡을 엄청 좋아하셨어요. 당시 처음 알게 된 대중음악이 김정호 노래였다고 해요. 결혼하고 나서는 오히려 남편이 애창곡으로 더 부른다고 합니다. 자주 불러주기도 하고요. 나이가 들어도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달까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줬을 때,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껴요. 그들에게 음악이 삶이라면, 저에겐 삶이 곧 음악이랍니다.”


    안승명 뱅뱅LP음악카페 대표. /김승권 기자/

    카페 곳곳엔 아날로그 감성의 옛 물품들이 ‘현재’로 소환되고 있었다. 그는 쉽사리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수집 습관이 생겼다. 2G폰, 수동 타자기, 필름 카메라, 워크맨, 다이얼 전화기, 선데이 서울 잡지, 오르간, 철 도시락…. 시대를 거스른 1970~80년대 물건들이 카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납장엔 손님들의 애정 어린 글귀가 쓰여진 LP판이 층층이 붙여져 있다. 뒤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고전 레코드집, 세계 명곡집, 클래식 전집 등 음악 서적도 빼곡히 진열돼 있다. 빛바랜 추억의 현장이다.


    창원 뱅뱅LP음악카페 내부. /김승권 기자/

    이 뿐만 아니다. 주인이 아니면 찾기 힘든 서가 구석엔 희귀품도 보관돼 있다. 옛날식 축음기다. 전기가 없던 시절 만들어진 태엽식 전축으로, 플라스틱판이 아닌 돌판을 얹여 음악을 듣는다. 빈티지한 외관과 둔탁한 음질이 묘한 끌림을 준다. 조금만 보관을 잘못해도 파손되기 쉽고 관리가 까다로워 소장하는 이도 얼마 없단다.

    카페는 LP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을 넘어 예술인의 문화사랑방으로도 통한다. 시를 낭송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악기가 연주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주로 글의 영감을 얻으려는 문인들이 자주 찾는다. 경남문인협회 회장인 이달균 시인이 애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시인은 “요즘 신청곡 받으며 DJ 멘트하는 사람이 없다. 이곳은 미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잃어가는 우리 정서를 재향유할 수 있는 향수의 공간이기도 하다. 바쁜 환경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갖고 있는 고독을 음악으로 힐링할 수 있다. 추억을 떠올리고 싶은 촉매제 역할도 가능하다. 뱅뱅LP음악카페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온다는 버스킹 가수 정은영씨도 “대학가요제를 거쳐 간 7080세대들에게 추억의 장소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옛 분위기 때문에 자주 방문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런 공간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안 대표는 카페가 사람과 음악을 이어주는 장소로 기억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면서,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꿈꾼다. 그에게 LP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기다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사람들은 기다림이 없어요. LP판은 끄집어내고, 닦아야 해요. 트랙도 있어 음악을 고르기까지 손이 많이 가죠. 음악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기다리는 거예요. 조바심을 가진 사람들은 LP음악을 듣지 못해요. 옛날 앨범은 같은 곡이라도 새로 부른 음악이 많아요. 히트곡을 모아 앨범이 나오기 힘든 구조였으니까요. 기다림이야말로 LP의 진짜 매력 아닐까요.”

    LP는 정성이 더해져야 비로소 소리를 낸다. 음악이 질린다고 간단한 버튼 하나로 지우는 일도 불가능하다. 문득 LP의 삶이 우리 인생과 닮았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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