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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법무장관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들의 변호사-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회계사)

  • 기사입력 : 2021-03-09 19: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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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겨울은 정말 춥고 시렸다. 고사리 손의 꼬마부터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그 춥고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호를 구하겠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부르짖었다. 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침몰사건, 뇌물을 받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발 벗고 나선 비리 등의 국정농단으로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어 구속됐다. 삼성이 박근혜 등에게 건넨 300억원 중 86억8000만원만 뇌물로 인정되어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월 18일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런데 이 합병으로 국민연금은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온 국민이 노후자금을 목적으로 납입하고 있는 게 국민연금 아닌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간의 이목은 자신들의 노후자금이 한국 최고 부자 재벌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 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삼성의 총수를 구속하는 게 옳은지에만 집중됐다. 뇌물의 달콤함에 취한 박근혜 일당은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최고 부자의 배를 불려주는 최고 부역자 역할을 했으니, 온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국민연금의 손실액은 최소한 어떤 형식으로든 삼성가와 박근혜 일당은 반납해야만 한다. 5000억원이든 1조원이든 삼성이 그 당시 사회기금으로 출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정말 크다. 법정에서 흘린 눈물보다는 당연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며, 구속여부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변수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말에 거는 기대는 컸었다. 국정농단에 진절머리 난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발한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온 국민을 설레게 했었다. 그러나 이게 빈말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 고관대작들의 속내는 내뱉은 말과는 너무 달랐다. 최서원(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에 대한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국의 딸 조민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비리와 추미애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에 우리는 더 크게 무너져버렸다. 특히 조국과 추미애는 평등, 공정, 정의를 주로 다루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이들 자체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도 불발된 이런 사람들을 누가 뭐라고 하건 말건 장관으로 임명하고야 마는 게 대통령의 통치철학이었다.

    지난 2월 22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인 메릭 갈런드는 인사 청문회에서 이런 각오를 다졌다. “법무장관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들의 변호사입니다!” “그 누구에 의한 당파적이거나 정치적인 수사를 막기 위해 내가 가진 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권과 확연히 비교된다.

    만일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한 과정을 거친다고 하여 정의로운 결과가 될까?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일단 법적·표면상으로는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이 표면상 정의마저 요원하다. 더 나아가 금수저·흙수저, 기울어진 운동장, 승자독식 사회 등 내재된 차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달리기 경쟁에서 승자는 정해져 있으므로 승부 조작을 할 필요도 없다. 이 경주가 과연 정의로운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런 모순이 해결되어야만 그 결과는 완벽하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이 작년 12월 번역돼 나왔다. 불공정과 불의에 무너져 내렸던 한국에서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완벽한 공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학력주의를 ‘면책적 편견’으로 단정하며 대학 간판이 무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과제를 던진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지만 패배자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운이다.”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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