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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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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5주년 특집] 수습이 뛴다

  • 기사입력 : 2021-03-02 08: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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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6년 3월 1일 창간한 경남신문은 오늘까지 75년 동안 2만2627호를 발행했습니다. 경남 최고 지령(창간 이후 발행한 호수)인 경남신문이 75년간 언론보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근간에는 지역민이 있었습니다.

    지역민의 애환은 우리 지역이 함께 울고 웃게하는 소식이 되었고, 지역민의 목소리는 우리 지역을 더 나아지게 하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역신문은 지역민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지역민의 관심으로 자랐습니다. 신문뿐만이 아닙니다. 기자를 만드는 것도 지역민입니다. 기자를 뽑는 것은 언론사였지만, 진짜 기자로 거듭나게 한 것은 자신의 삶으로 깨달음을 주는 지역민이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창간 75주년인 올해 1월 입사한 50기 수습기자의 마음속 ‘수습’ 딱지를 떼게 한 지역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한유진(28) 수습기자 "작은 것도 소홀 않는 기자로 위로받는 순간 오길"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해안변공원에 가면 터줏대감처럼 자리한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길고양이들이 한가로이 볕을 쬐는 모습에 절로 힐링이 됩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인가와 먼 이곳에서 길고양이들은 먹을 것도 없이 어떻게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겨울을 보냈을까?

    공원을 살펴보니 2층 높이의 팔각정 아래 담요가 덮인 나무판자와 스티로폼이 얼기설기 놓여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료가 가득 담긴 사료통과 물통도 함께 있었습니다. 길고양이 급식소였습니다. 길고양이는 여기서 매서운 겨울철 바닷바람을 피하며 허기진 배를 채웠을 겁니다.


    창원 가포해안변공원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자원봉사자 오은정씨/
    창원 가포해안변공원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자원봉사자 오은정씨/
    창원 가포해안변공원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자원봉사자 오은정씨/

    길고양이 급식소는 지역주민들이 자비를 들여 운영해왔다고 합니다. 지난 22일 길고양이 급식소 '방문자께 올리는 글'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측은지심에 길고양이를 챙기고 있다는 자원봉사자 오은정(51)씨는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일상 생활을 잠시 제쳐두고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라며 “길고양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생명이다. 작은 손길로 하여금 인식을 바꾸고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고양이를 보살피면서 되레 위로받기도 해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고 그 속에서 힘을 얻거든요”라고 했습니다.

    여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2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반월동의 한 거리에서 골목 사이마다 사료가 가득 담긴 밥그릇과 물이 담긴 통조림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네어르신이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골목을 지나던 한 주민이 제게 귀띔해주었습니다. 길고양이들은 이처럼 작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지역주민 한 분 한 분 덕에 올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수습기자로 일한 지 이제 두 달이 흘렀습니다.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험이 일천한 저는 이 사안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할 것인지는 길고양이를 보살핀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도 기자생활 끝에 오씨처럼 되레 위로받는 순간이 오길 기다립니다.


    김용락(29) 수습기자 "학보사 후배에 희망 전하는 선배 되고파"


    코로나19로 지난 한 해를 보낸 대학교 4학년이 올해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분위기를 담고자 지역 대표 사립대이자 모교인 경남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잠깐이나마 마스크를 벗고 학사복도 입으니 졸업하는 분위기도 나고 좋아요”라고 말하는 졸업생들을 보니, 취재온 것도 깜빡하고 과거 대학생 시절 모습이 떠올라 훈훈한 기분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때 졸업식 현장을 취재하던 이강민 경남대학보사 기자를 만났습니다. 저도 학보사 기자 출신인지라 들뜬 마음에 아는 척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학생기자실까지 가게 됐습니다. 3평 남짓한 학생기자실 학보자료실에는 60여년간의 학보가 보관돼 있었습니다. 누렇게 변색된 채 세로쓰기로 쓰여진 대판 크기의 학보부터, 회색 종이로 된 베를리너판 학보, 종이신문 폐간 이후 보관용으로 프린트한 학보까지. 또다시 옛 향수에 젖어들었습니다.

    이강민 경남대 학보사 기자가 학생기자실 학보자료실에 쌓인 과거 학보를 뒤적이고 있다./김용락 수습기자/
    이강민 경남대 학보사 기자가 학생기자실 학보자료실에 쌓인 과거 학보를 뒤적이고 있다./김용락 수습기자/

    감상에 빠진 저를 현실로 다시 부른 것은 이강민 학생기자의 한숨이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면서 종이신문이 폐간됐어요”라며 “기자들 사이에서는 밀착취재 없이 원론적인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써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취재원을 만나지도 않고 기사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학보사 존폐를 논하게 될까 두려워요”라고 우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강민 경남대 학보사 기자의 취재메모./김용락 수습기자/
    이강민 경남대 학보사 기자의 취재메모./김용락 수습기자/

    그 말을 들은 저는 겉으론 담담한 척 했지만 부끄러웠습니다. 과거 지면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통신사 기사 받아쓰기를 자주 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경남신문 수습기자로 들어온 지금도 그때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기사가 알맹이 없이 두루뭉술하다는 지적을 선배들에게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이강민 기자의 우려와 반성은 저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제가 있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후배기자를 통해 깜빡 잊고 있던 부끄러운 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강민 기자. 다음에 만날 때는 떳떳하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선배기자가 돼 있겠습니다.


    박준영(27) 수습기자 "특종 낚지 못하더라도 취재현장 달려갈 겁니다"


    지난해 12월 말 경남신문 50기 수습기자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코로나19로 암울했던 지난 한 해의 끝자락에 값진 소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염치없게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벌써부터 ‘어떤 특종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그때 동호회에서 만난 삼촌뻘의 형인 윤희열(42)이 새벽 낚시를 가자고 했습니다. 잠시 고민을 잊고자 윤형의 제안에 응했습니다.

    우리는 새벽 5시부터 낚시 가방을 메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평소 낚시를 즐기던 윤형은 능숙하게 갯바위에 자리를 잡고 수심을 체크하고 밑밥을 친 뒤 낚싯바늘에 크릴을 달아 바다에 던졌습니다. 금방이라도 월척을 낚을 듯한 기세였습니다. 2시간 동안 윤형의 낚싯대는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박준영 수습기자와 함께 새벽 낚시를 윤희열(42)씨./박준영 수습기자/
    박준영 수습기자와 함께 새벽 낚시를 윤희열(42)씨./박준영 수습기자/

    머쓱해하는 윤형에게 저는 “입질도 없는데 재미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윤형은 민망해하며 “낚시도 운이 필요해. 하지만 낚지 못한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어”라고 답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제게 그는 “고기를 낚으러 오는 것도 맞지만… 이 시간 자체가 좋다.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라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윤형은 7시간 동안 낚시를 했지만 한 마리도 낚지 못했습니다. 수년간 낚시를 해 온 그에게도 이런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빈 어망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낚시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앞으로도 윤형은 낚시를 하기 위해 이날처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낚시 가방을 꾸릴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지난 1월부터 수습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취재 과정이 순탄치 않습니다. 사전에 세웠던 취재계획과 현장이 달라 어그러지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비록 제대로 된 기사를 낚아올리지 못하지만, 매번 낚시터로 향하는 윤형처럼 부지런히 발걸음을 현장으로 옮깁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알려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러다 보면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살아있고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사를 하나쯤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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