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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지금, 옛날 영화를 보는 중입니다- 이서린(시인)

  • 기사입력 : 2021-02-18 20: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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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짙푸른 대나무 숲이 춤을 춘다. 바람에 일렁이는 가느다란 대나무 줄기를 마치 학처럼 유유하게 타는 남자와 여자. 청명검을 쥔 젊은 여자의 얼굴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과 대나무 잎 사이로 서늘하도록 아름답다. 검 한 자루 없이 맨손으로 여자를 상대하는 중후한 남자의 얼굴도 출렁이는 대나무 사이사이 결연한 표정이다. 춤을 추듯 펼쳐지는 남녀의 대결은 쓸쓸한 음악을 배경으로 최고의 장면을 보여준다.

    무림의 고수 리무바이와 용이 대나무 숲에서 겨루는 장면이다. 어쩌다 비 오는 일요일에 혼자 남은 집. TV로 영화를 찾는데 〈와호장룡〉이 눈에 띈다. 오래전 극장에서 보고 그후 TV에서 한 번 더 보고, 오늘까지 세 번째 보는 셈이다. 이안 감독, 주윤발(리무바이 역), 양자경(수련 역), 장쯔이(용 역), 장첸(호 역) 주연의 중국 무림을 배경으로 만든, 20년 전 2000년에 개봉한 영화다.

    〈와호장룡〉은 누워있는 호랑이와 숨은 용이란 뜻으로 은거한 고수를 뜻한다. 제갈공명을 와룡선생이라 불렀으며 제갈량이 살던 동네를 와룡강이라 했던가.

    귀족의 딸 용과 사막의 산적 호의 격렬한 사랑. 그와 반대로 사형 관계인 리무바이와 수련은 평생을 서로 마음으로만 흠모하고. 어느 날 차를 마시다 아주 짧은 순간 손을 잡고 놓으며 리무바이는 수련에게 말한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들에는 영원함이란 없소.”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평생을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리무바이. 숨을 거두며 나누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키스. 용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까지, 여러 번 보아도 좋은 영화다.

    내친김에 옛날 중국영화를 더 보기로 한다. 지금은 보기 힘든 정말 괜찮은, 아니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에 들어가는 중국과 홍콩의 영화들이 그립다. 요즘은 장예모 감독과 왕가위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붉은 수수밭(1988)〉을 시작으로 팬이 된 감독. 붉은 색과 공리와 서사를 사랑한 장예모 감독의 많은 영화를 기억한다.

    그리고 골수팬을 가진 왕가위 감독은 2012년 〈일대종사〉를 끝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뭔가 하나를 만든다는 소문은 있는데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용하다. 검은 선글라스로 허무와 고독을 연출하는 왕가위의 영화도 좋아해 대부분 보았다.

    물론 대만 출신 감독 이안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니까 그의 영화는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중국과 홍콩 영화를 열거하였지만 북유럽, 이란, 러시아, 그리고 독립영화도 즐긴다. 코로나로 힘든 시절, 그래도 틈틈이 영화관을 찾지만 지금은 집에서 옛날 영화를 다시 보기 좋은 때.

    어릴 때 최초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흑백영화로 명화극장을 볼 때 사자의 울음소리로 시작하는 그 시간만은 열이 펄펄 끓어도 텔레비전 앞을 지켰다. 그렇게 영화감독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나만의 미니 영화를 만들리라. 그래서 소니 무비카메라도 샀지만 부끄럽게 방치하고 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면서.

    서극 감독의 〈신용문객잔 1992〉를 튼다. 장만옥과 임청하를 다시 본다니. 비는 내리고….

    이서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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