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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우직함으로 당당히 나아가자- 이준희(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21-01-05 20: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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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촌(牛村) 최태문 화백은 도내 으뜸가는 ‘소의 작가’로 불린다. 어릴 적 살았던 진주 비봉산 아래 상봉동은 소를 기르는 농가들이 많았고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소가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강한 붓놀림으로 화폭을 채우는 그는 한국화 특유의 ‘여백의 미’를 소 그림에서 구현해 냈다. 소 그림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바로 눈과 뿔. 소는 눈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하고, 뿔에서 성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화백은 우직함과 여유로움 등 인간이 소에게서 배울 점이 아주 많다고 한다. 오래전 본지에 소개된 그의 글에서 “소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인종(忍從)으로 다스리며 삽니다. 굴레를 거부하지 않고 채찍에 분노하지 않으며 간교를 모르지요. 소는 죽어서도 일모일골(一毛一骨)을 다 바치고 가잖아요. 운명을 받아들이고 퇴보를 거부하며 나태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최 화백이 평생 소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됐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근면·성실·풍요를 상징하는 소띠 해다. 더욱이 올해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하얀 소띠 해다. 소는 개와 함께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했다. 기원전 6000년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어졌고, 한국에는 김해에서 발굴된 소의 두개골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록에는 신라 눌지왕 22년에 백성에게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고, 지증왕 3년 소를 써서 논밭을 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만큼 소는 우리 농경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단순히 가축의 의미를 넘어 가족처럼 생각했기에 ‘생구(生口)라고 부르며 소를 소중히 여기고 인격시했다. 대표적인 일화가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로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

    조선 시대 18년 동안 영의정에 재임한 황희 정승은 조선왕조를 통해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 길을 가다가 늙은 농부가 검정 소와 누렁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묻자 농부는 귀엣말로 ‘누렁소가 더 잘하오’라고 답한다. 황희는 농부의 태도에 ‘귓속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다시 묻자 농부는 얼굴을 붉히며 ‘두 마리가 다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더 잘한다고 하면 못한다고 하는 쪽의 소는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잖소?’라고 답한다. 그제야 황희는 농부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이후 더욱 언행을 조심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를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충직함 때문일 것이다. 우직하고 온순하며, 끈질기고 힘이 세지만 사납지 않고 사람에게 순종적이다. 이러한 소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 냈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있다. 2021년 신축년은 어느 해보다 힘들고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지만 어진 눈, 강한 뿔 그러면서도 순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하고 근면한 소의 덕성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코로나19, 경제난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준희(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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