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성산칼럼] 주인으로 사는 비결 - 송봉구 (영산대 인문학 교수)

  • 기사입력 : 2020-12-16 21:25:28
  •   

  • 코로나19 때문에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고 있다가 문득 연구실 창문 너머 산을 보니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참 한 해가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연구실과 집을 오가면서 코로나 19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사이버 강의 찍다가 가버린 한 해를 경험하면서 인간은 주인으로 살기보다는 손님으로 살다가 간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수많은 철학자들이 오래전에 벌써 발견하고 말씀으로 남겨 놓았는데 그동안 주목하고 있지 못하다가 이번 코로나19 덕분에 새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먼저 공자는 사람이 사는 모습을 군자와 소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면서 ‘군자의 특징은 덕(德)을 생각하고, 소인의 특징은 땅을 생각한다’고 했다. 여기서 덕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고, 땅은 돈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덕보다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세상은 소인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 소인이 많아지면 서로 돈을 많이 가지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경쟁이 지나치면 나중에는 서로를 죽이면서까지 돈을 차지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삶을 추구할 게 분명하다. 이것은 인간이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손님으로 살다가 간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는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심을 이기고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덕을 키우라’고 했다. 이것이 사람이 주인으로 사는 비결인데 과연 나를 비롯해서 몇 사람이 이런 삶을 추구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다음으로 맹자는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대체(大體)를 키우면 소체(小體)는 저절로 말을 잘 듣는다’고 했다. 대체는 큰 몸이고, 소체는 작은 몸이다. 큰 몸은 마음이고, 작은 몸은 인간의 몸에 있는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맹자는 큰 몸인 마음을 잘 성장시켜서 권력이나 돈의 유혹에도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는 대장부의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부탁했다. 역시 대장부로 사는 게 주인으로 사는 것인데 과연 몇 사람이 대장부로 살다가 가는지 의문스럽다.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주인은 본성상 노예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사물과 관계하여, 이 사물을 단지 향유할 뿐이고, 노예는 직접 사물을 가공하여 사물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여 스스로가 자립적인 의식을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삶의 과정에서 주인은 자기의 존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예라는 타자에 의존하면서 비자립적 의식을 갖게 되고,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립적 의식을 획득하면서 주인과 노예의 의식상태는 역전되어버린다’고 했다. 헤겔은 주인은 향유만 하고 노동에 참여하지 않아서, 노동에 참여한 노예가 자립적 의식을 가진 주인의 삶을 살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헤겔보다 조금 늦게 태어나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 역시 우리에게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헤겔이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의식을 자립적 의식으로 변화시켜서 주인으로 살아갈 것을 제시했다면 최제우는 수련을 통해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발견하여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했다. 당시 조선은 소수의 양반들이 다수의 백성을 다스리는 신분제 사회였다. 만약 양반들이 공자나 맹자의 말씀대로 군자나 대장부의 삶을 살아서 다수의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면 동학은 조선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의 양반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수의 백성들을 괴롭혀서 동학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 동학의 주문수련을 통해서 한울님을 발견한 조선의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혁명에 앞장서게 된다.

    지금 우리들은 위 철학자들에 비교하면 돈의 노예가 되어 손님으로 살고 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길을 찾고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욕심 때문에 놓아버린 마음을 찾아야 한다’는 맹자의 말씀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한다.

    송봉구 (영산대 인문학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