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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코로나19와 숫자 0- 허충호 (사천남해하동본부장)

  • 기사입력 : 2020-12-14 07: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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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 충 호 사천남해하동본부장

    숫자의 발견은 문명 발전의 전기가 됐다. 많은 물량을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탁월한 수단이 됐고, 복잡한 수식계산을 통해 우주선이 지구 밖까지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수의 역할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여러 숫자 중 압권은 ‘0’이다. 누가 최초로 발견했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서기 628년 인도의 수학자며 천문학자인 브라마굽타가 쓴 천문학서적인 ‘브라마스푸타시단타’에 실린 것을 최초로 보고 있다. 인도에서 탄생한 0은 8세기 무렵 이슬람으로 전파돼 오늘날의 아라비아 숫자로 굳어졌다. 물론 이슬람이 처음부터 0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 효용성과 편리함으로 결국 이를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0의 발견을 숫자혁명의 백미로 꼽는 것은 그것을 통해 카운팅(counting)의 폭을 거의 무한대로까지 확장시켰다는 데 있다. 만약 숫자 중에 0이 없었다면 아주 불편한 세상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불교적 개념으로는 없다는 뜻의 무(無)에 해당하는 0이 사실은 무한대로 채울 수 있는 도구가 됐으니 아이러니다. 불교경전인 반야심경의 압권으로 평가되는 ‘색증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의 오묘한 섭리를 담고 있는 것이 0이 아닌가 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그들에게는 실명 대신 숫자가 부여됐다. 국내 몇 번, 경남 몇 번, 무슨 시군 몇 번으로 세분된다. 실명 대신 수를 선택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가뜩이나 상심이 클 확진당사자로서는 이런 넘버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딱히 이를 대체할 만한 방법은 찾지 못한 것 같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근원적인 해법은 그 숫자를 0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0이 없어 불편한 세상이 아니라 코로나 확진자 0이 있어 편한 세상이 됐으면 한다.

    허충호 (사천남해하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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