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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용서- 주재옥(경제부 기자)

  • 기사입력 : 2020-12-06 19: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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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재옥 경제부 기자

    공권력은 무고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이들은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는 제보를 무시했고, 강압수사로 받아낸 허위 자백을 범행 증거로 내밀었다. 하지만 진범이 17년 만에 “제가 살인자입니다”라고 사죄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에게 무죄가 확정되며, 검찰이 처음으로 사과한 것이다. 진범의 자백으로 진실이 드러났던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 이야기다.

    ▼미국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983년 한 보석상 주인이 무장강도가 쏜 총에 숨졌다. 스트라우드 검사는 정원사였던 34세 글렌 포드를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30년 뒤 포드가 무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정의보다 이기는 것에 몰두했다”고 참회했다. 포드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반성의 글을 신문에 기고하면서, 기구한 운명의 포드보다 진심어린 사과를 한 스트라우드가 더 회자됐다.

    ▼영화 ‘오늘’의 주인공 다혜는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는다. PD인 그녀는 가해자 소년을 위해 탄원서를 쓰고, ‘용서’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하지만 1년 후 가해자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성급한 용서가 피해자를 한 명 더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자괴감에 빠진다. 다혜는 “용서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는데 깨닫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영화는 반성 없는 범죄 앞에서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최근 검찰이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 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윤씨는 과거 수사 형사들을 향해 “성경에는 백 번이고 만 번이고 모든 잘못을 용서하라고 한다. 그들을 용서하겠다”고 했다. 증인으로 나와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에게도 “고맙다”고 덧붙였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다’라고 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보다 어려운 건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이다.

    주재옥(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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