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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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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산사(山寺)-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부이사장)

  • 기사입력 : 2020-11-09 2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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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북면 들녘이 가을걷이를 마쳤다. 얼마 전만 해도 황금빛 들판이 이제 황량하다. 반농반도로 변해가는 북면의 추수에서 프랑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밀레의 만종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부부의 경건한 삼종기도는 아니라도 여름의 태풍을 이겨낸 농민의 애환과 구슬땀이 어린 공간이다. 절기가 상강인 아침은 서리 낀 바람이 싸늘했다. 산 정수리부터 번져내려오는 단풍은 만추의 풍광을 예고하고 다가올 겨울을 알려준다. 비상(코로나19)이 일상(언텍트 사회)이 된 시절에도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휴일인 오늘도 병원은 분주하다. 개원을 앞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대구에서 커튼업체 사장님도 나오셨고 간판 디자인업체 분들도 일하신다. 작업의 힘든 부분을 머리를 맞대 의논하며 일을 진행한다. 대규모 제조업체처럼 로봇이나 자동화 설비가 갖춰져 작업량에 시간을 입력하면 제품이 생산되는 일이 아니라,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고 설치하는 일이 다반사라 예상과는 맞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해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 본사다. 가야총림 법보종찰이기도 하다. 총림이란 숲이 빽빽이 우거진 형상으로 불교에서는 선원 강원 율원을 갖춘 종합 도량을 일컫는다. 법보종찰은 부처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장경각에 보존한다는 의미로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금강계단에 봉안한 불보종찰 영축총림 통도사와 구분된다.

    해인사 산내에는 유서깊은 여러 암자들이 있다. 자연의 기묘한 형태에 위치한 희랑대는 희랑조사 수행처였고 지족암은 근세 41명의 가족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해인총림 율주 출신인 일타 스님이 주석 하셨다. 원당암은 재가불자에게 참선 수행 지도를 위해 108평 규모의 달마선원을 개설했고 공부가 제일 수지맞는 장사라고 후학들에게 일갈하신 혜암 종정이 머무신 곳이다. 백련암은 산내 암자 중에 높은 곳에 위치하여 경계가 탁 트여 시원하다. 암자 주변에는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 등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싼 절승지로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명언을 남기신 성철스님이 계셨든 곳이다. 그 외에도 홍제암 고불암 국일암 금강암 금선암 길상암 삼선암 약수암 용탑암 청량사 등이 있다.

    홍제암의 잠은 달콤하다. 요사채 옆에 밤새워 쉼 없이 흐르는 둔탁한 홍류동 계곡 물소리가 참배객의 번뇌 어린 머리를 식혀 준다. 잠이 든 듯 깬 듯 몇 번을 뒤척이면 청아한 부전스님의 도량석이 칠흑 속의 암자를 깨운다. 기상 목탁이다. 세면을 하고 방을 나서면 하늘에는 북두칠성과 북극성 등 수많은 별의 제전이 펼쳐진다. 새벽예불을 위해 원시적 어둠 사이로 더딘 걸음이 본사로 향한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이 주불이다. 우측에는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이 배치되고 좌측에는 지장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한다. 삼배의 예를 올리고 앉는다. 치문반 사집반 사교반 대교반 강원 스님들의 각진 좌복에서 구도를 향한 치열함이 엿보인다. 종송이 운다. 중생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범종도 28회 따라 운다. 중생의 지혜 체득을 위해서. 법을 전하는 법고는 중생의 깨침을 위해 울리고 구름 모양의 운판은 허공을 헤매는 고혼을 위해 운다. 게으른 수행자를 견책하는 목어를 마지막으로 본전의 기도가 시작된다. 산중의 큰 어르신 방장스님이 나오셨고 키가 크신 주지스님이 반가 사유의 모습으로 좌정했다. 이제는 만행을 나서자.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의 옛 모습이 그립고 손수 차를 우려내는 홍제암 조실 종성 스님도 보고 싶다. 산사의 굽어진 오솔길도 걸어보고 지리산 정령치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도 보러 가자. 가을이니까 시리도록 파란 가을이니까 길을 나서 보자.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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