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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단풍- 조고운(문화체육부 기자)

  • 기사입력 : 2020-10-27 20: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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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고운 문화체육부 기자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단풍 드는 날’이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다. 코로나19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요즘, 출퇴근길 가로수가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풍경으로 삶의 생동감을 느낀다.

    ▼단풍은 나무의 마지막 사투의 흔적이다. 나무는 매서운 겨울나기를 위해 광합성이 필요한 나뭇잎을 스스로 떨군다. 나무 세포 안에 영양분을 쌓고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다. 나무가 나뭇잎을 떨구기 위해 수분을 잎으로 보내지 않기 시작하면, 푸름을 유지하던 엽록소가 파괴돼 잎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든다. 나무의 처절한 생존 본능이 황홀한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선물하는 셈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이 위태로울 때 온 사력을 다 한다. 그 강인한 생명력이 명품을 탄생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프랑스 명품 와인을 탄생시킨 포도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고 40m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좋은 물과 각종 미네랄 영양분을 흡수한 결과물이다. 세계 명품 바이올린으로 꼽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재료인 전나무는 부족한 물과 극도의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운 나무로 흉내낼 수 없는 천상의 소리를 낸다.

    ▼코로나19로 올 한 해가 사라진 것 같다며 한숨 쉬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에밀리 해빈크 박사의 연구 결과 거친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일수록 단풍이 더 붉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나뭇잎이 얼마 남지 않은 양분을 더 많이 활용하면서 색소가 더 붉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는 여느 해보다 혹독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도 하다. 올가을엔 길가의 단풍을 보며 이 척박한 시간들이 먼 훗날엔 보다 귀한 시간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조고운(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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