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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청년이 산다 경남이 산다 (3) U턴 청년 이야기- 경남에 삽니다

큰 세상 꿈꾸던 청춘들, 고향서 새로운 꿈 펼친다

  • 기사입력 : 2020-10-21 20: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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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큰 세상을 꿈꾸며 경남을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벗어나고 싶었으나 그리웠고 지겨웠기에 변화시키고 싶었다. 태어난 땅을 떠나 만난 넓은 세상에서 배운 것들을 자신들이 나고 자란 땅에서 마음껏 펼치기를 원했다.

    굽이굽이 산과 강을 낀 산청에서, 드넓은 바다를 품은 거제에서 두 청춘을 만났다.


    ◇농업과 농촌의 변화 ‘거창한 파머스’= 거창에서 나고 자란 민천홍(35·거창한 파머스 이사)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거창을 떠났다. 타지역에서 공부했고 이후에는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셰프로 일했다. 넓은 세상을 누볐지만 농촌에서 농사짓는 삶을 마음 한켠에 늘 품고 있었다고 천홍씨는 설명했다. 그렇게 비슷한 꿈을 꾼 아내와 고향 거창으로 돌아왔다.

    거창한 파머스는 2018년 설립된 거창의 청년 농업인 조직이다. 5명의 거창한 농부들이 하는 것은 단순한 농사짓기가 아니다. 각자 농사를 짓는 농부이면서 농촌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인근의 대구한의대와 MOU를 체결해 재학생 대상 워킹홀리데이와 농촌학기제를 운영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과따기 등 농촌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의 일 또는 땅을 이어받았지만 이어받은 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변형하고 또 확장해 나가고 있다. 천홍씨는 과수원 한켠에 사과즙을 만드는 시설을 갖췄고 수출 등 판로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후 목표는 전공을 살려 사과 관련 농가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민천홍 ‘거창한 파머스’ 이사가 과수를 점검하고 있다.
    민천홍 ‘거창한 파머스’ 이사가 과수를 점검하고 있다.

    “지역으로 돌아온 청년들이 뭘할 수 있을까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거창사과를 더많은 이들이 더 많은 곳에서 소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또 개인적인 꿈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죠.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아내와 카페를 차리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고요.”

    농업의 변화와 함께 지역에서의 삶도 함께 고민한다. 그가 몸담은 지역 청년조직 ‘낯가림’과 함께 농촌에서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지역 청년모임인 ‘낯가림’이 지역내 상점 도색·리모델링 봉사활동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낯가림/
    거창지역 청년모임인 ‘낯가림’이 지역내 상점 도색·리모델링 봉사활동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낯가림/

    “놀거리, 즐길거리가 없다는 게 농촌살이를 꺼리는 대표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상권이나 문화시설이 생기면 농촌살이도 훨씬 나아지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수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스스로 놀 궁리도 하게 됐죠.”

    그렇게 올해 처음으로 호러축제를 기획했다. 거창문화원과 거창박물관 등 인근 거리를 호러영화관, 전시관, 프리마켓 등으로 꾸몄다. 올해의 도전은 거창 청년들이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좋은 밑거름이 됐다.

    거창 청년들이 올해 진행한 호러축제./거창한파머스/
    거창 청년들이 올해 진행한 호러축제./거창한파머스/

    “거창살이가 엄청 무료할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구석구석 누비다 보면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되고 도시에만 살았던 청년들의 선입견이 완화되죠.”

    천홍씨는 지역이 청년들의 놀이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경남이 청년특별도를 선언하면서 지역에서도 인식이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이런 변화가 지역 행정에까지 스며드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새로운 변화와 시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각종 서류가 우선이고, 행정적인 제재가 따르거든요. 행정도 함께 유연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청년유입에 대해서는 지역만의 콘텐츠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8월 진행된 대구한의대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진행된 대구한의대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달살이 등 청년들이 지역과 농촌을 경험하는 것은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기간동안 충분히 지역에서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 날을 지내고도 지역의 문화나 콘텐츠를 경험하고 즐기지 못한다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죠.”


    ◇지역을 디자인하는 ‘거제 섬도’= 문화기획 관련 일을 하던 김은주(33·섬도 대표)씨는 회사가 결정하고 전달되는 내용만으로 실무를 하는 것보다는 직접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싶었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싶은 터를 그가 나고 자란 거제로 선택했다.

    ‘거제 로컬디자인 섬도’ 김은주 대표가 지난해 8월 열린 거제 조선소 청년노동자들의 식물테라피 워크숍 ‘블루칼라의 정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섬도/
    ‘거제 로컬디자인 섬도’ 김은주 대표가 지난해 8월 열린 거제 조선소 청년노동자들의 식물테라피 워크숍 ‘블루칼라의 정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섬도/

    “거제는 좀 특이한 곳이에요. 산업적으로 발전돼 있으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요소들이 어우러진 곳이죠. 또 조선업이라는 산업의 흥망 역사를 함께한 곳이기도 하고요. 거제에 이렇게 특별한 요소들이 있고, 또 저는 그 특별함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랐죠.”

    거제로 돌아온 것은 거제가 본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으면서 또 돌아오고 싶었던 곳, 바로 고향 거제였다.

    은주씨는 거제 지역문화공간 섬도를 만들었다. 산림청 소속의 예비사회적 기업인증도 받았다. 거제를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교육 또는 여행 등의 형태로 이를 실현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거제 조선소 청년노동자를 위한 원예치료 ‘블루칼라의 정원’. 은주씨가 생각하는 거제의 대표적인 키워드 조선업과 자연, 둘을 연결했다. 조선소 근로자들과 함께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지며 허브를 심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물테라피 워크숍이다.

    “거제는 조선업의 흥망을 함께 한 지역인 만큼 아픔과 우울감도 많은 지역이에요. 지역의 겉만 봐서는 모르는 아픔이죠. 실제 자살률도 경남에서 가장 높고요. 조선업 퇴직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한 상담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신청하고도 실제 상담이 이뤄지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돌아온 고향 거제가 마냥 따뜻한 부모의 품은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생각이 실제로 실현되기까지 너무 많은 벽이 존재했고 은주씨는 지금도 그 벽을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젊은 여성에 대한 선입견, 외부에서 좀 배우고 왔다고 잘난척한다는 시선들도 있었어요. 청년이라는 단어를 구호처럼 외치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를 선호하지 않아요. 여전히 사회는 청년이라는 이름을 지원의 대상으로만 본다는 것을 지역에 정착하며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죠.”

    문화 기획자로서, 한 회사의 대표로 자생과 생계에 대한 고민도 뒤따른다.

    “양질을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이를 통해 돈을 버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어요. 지역의 많은 청년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 특성에 맞춘 청년유입정책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거제는 조선소로 인해 젊은층이 그나마 유입되는 편인데 특히 배우자를 따라 유입된 여성들이 지역 정착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역에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출산이나 육아의 과정을 겪고 이 과정에서 일부 ‘맘카페’를 통한 정보·인적교류가 발생하는데 그걸로는 사회적인 관계가 충족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거제의 경우는 단순히 청년인구를 끌어오는 것보다는 유입된 이들이 얼마나 제대로 지역에 정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여져요.”

    이지혜 기자 jh@k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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