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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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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50) 가서만금(家書萬金)

--집에서 온 편지가 만냥의 가치가 있다

  • 기사입력 : 2020-10-20 08: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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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은 전자통신이 발달해서 손으로 쓴 종이 편지가 거의 사라질 형편이다. 옛날에는 편지가 사람 사이의 소식을 전해주는 거의 유일한 통신 방식이었다.

    당나라의 두보(杜甫)는 안록산(安祿山)의 난에 장안에서 억류를 당했다. 피난 간 가족들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때 ‘춘망(春望)’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 “전쟁의 다급함을 알리는 봉화불이 석 달 동안 이어지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냥의 가치에 이르네.(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라는 구절이 있다. 집에서 오는 편지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알 수 있다.

    가족 간에 주고받는 편지를 ‘가서(家書)’라 일컫는데, 특히 부친이나 조부나 형님이 보내는 편지에는 교훈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사람의 도리에 관한 것, 언행에 관한 것, 처신하는 방법, 세상 살아가는 방법, 친구 사귀는 방법, 관직에서의 자세,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 집안을 다스리는 방법 등등 인간 세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한나라 무제 때의 공장(孔臧)이 아들에게 준 가서가 지금 남아 있는 최초의 가서다. 역대로 제갈량(諸葛亮), 사마광(司馬光), 왕양명(王陽明) 등의 가서가 유명하다. 청(淸)나라 대신 증국번(曾國藩)의 ‘증국번가서’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서로 청대 3대 베스트셀러였다.

    우리나라 선현들도 가서를 많이 썼는데, 가서를 가장 많이 쓴 분이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다. 선생의 가서는 약 940편 되는데, 선생의 인격과 인생관, 교육관, 생활방식 등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이다.

    지금까지 선생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왔으나 철학사상 연구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선생의 인간상과 생활방식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가서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에 맨 먼저 착안하여 오랜 세월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가 있었으니, 포항공대에 근무하던 고 권오봉(權五鳳) 교수였다. ‘이퇴계 가서의 종합적 연구’라는 논문을 완성하여 퇴계의 인간적인 거의 모든 것을 다 밝혀 놓았다.

    그러나 논문이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권 교수는 생전에 우리말로 옮기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논문을 번역하여 보급해야 하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가진 분이 선생의 종손 이근필(李根必) 옹이었다. 이에 집안 분들이 번역비 출판비를 마련하여 마침내 지난 7월에 출판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 논문을 통해서 퇴계 선생의 많은 것이 새롭게 밝혀졌으니, 읽으면 도움 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선생의 가서는 맏아들 이준(李寯)과 맏손자 이안도(李安道)에게 준 것이 대부분인데, 이 가서도 이장우(李章佑) 교수 등에 의해서 이미 번역되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른 길을 제시한 이런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우리나라나 우리 사회가 더욱 좋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 家 : 집 가. * 書 : 글 서. 편지 서. * 萬 : 일만 만. * 金 : 쇠 금. 황금 금. 돈 금.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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