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시가 있는 간이역] 소 산 - 서성자

  • 기사입력 : 2020-10-15 07:59:45
  •   

  • 슬프기도 바쁠 텐데 청수국 화창하여라

    저 혼자 풍성한 축제를 치르는 듯

    무수한 작별을 씻는 하늘 소풍 뒤뜰에


    냄새 닮은 사람들 한소끔 울고 난 뒤

    숨탄것의 냉정을 허락한 어느 신이

    요절이 꿈이라 적힌

    옛 편지를 태운다


    ☞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데 세상은 모두 맑음이라니…. 무수한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밤이 밝음이니…. 지독한 이별의 낮과 밤이 너무 환해서 조용히 울 수조차 없는 날이 있습니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거나 별도 달도 없는 그런 밤이라면 신들린 듯 슬픔을 휘갈겨 쓸 수도 있겠습니다. 슬픔 위에 물벼락을 쏟아 내리거나 어둠 위에 더 깜깜한 절벽이라면 웬만한 슬픔 따윈 얼룩지지 않을 만큼 강건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너무 화창해서 쉽게 슬픔을 내보일 수 없는 날이 여럿 있습니다. 가끔은 그의 살내가 그리워 뒤뜰에 앉아 기도를 올립니다. 진짜 눈물을 심장에만 조용히 심어 두고 詩밥을 짓는 시인이 있습니다.

    서성자 시인의 시조 ‘소산’ 앞에 쓸쓸한 마음을 함께 나누며 허공에 고봉밥을 올립니다. ‘슬프기도 바쁠 텐데 청수국 화창하여라’라니…, 시적 내재율의 깊이가 하늘을 찌릅니다. 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깊은 슬픔으로 넋 놓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소산’은 불에 태워 허공에 흩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작품을 몇 번을 읽어도 시인의 비밀을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시인의 가슴속에 꼭꼭 숨겨둔 ‘요절이 꿈이라 적힌’ 하늘 한복판에 태워 붙인 옛 편지를 읽어 주면, 들어 줄 대상이 몹시 궁금해집니다. 독자와 시인과 숨바꼭질하며 행간을 무한정으로 확장해가는 좋은 시조입니다. 남겨진 사연은 매우 슬프지만, 시를 읽는 오늘은 참으로 화창합니다. 임성구(시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